수래드 지미와 앨리슨의 단칸아파트.

대학을 나와 친구 클리프와 과자점을 경영하고 있는 지미는 변함없이
지루하기만 한 일상생활에 일중을 느낀다.

그것은 마침내 엉뚱하게도 아내 앨리슨이 중산계급출신이라는데 대한
분노로 폭발된다.

앨리슨은 자기에 분풀이를 하는 남편에게 임신한 사실마져도 알릴수가
없다.

그때 앨리슨의 친구도 지방순회연주단의 여배우인 헬레나가 찾아 온다.

헬레나의 계교로 지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앨리슨의 아버지가 딸을 데려
가버린다.

지미의 분노는 헬레나와의 동거생활로 이어지나 일요일의 지루함은
마찬가지다.

아이를 유산해 버린 고통속에서 지미의 분노에 이해와 공감을 느끼게 된
앨리슨이 돌아온다.

헬레나가 떠남으로써 지미와 앨리슨이 화해를 하게 되나 두사람의 미래가
더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1950년 영국에 나타난 문학사조인 "앵그리 영멘(Angry Young Men/성난 젊은
이들)"의 기수이자 대변자로서 지난 26일 사망한 극작가 존 오스본의 희곡
"성난 얼굴로 뒤돌아 보라(Look back in Anger)"의 줄거리다.

한 마디로 낡은 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의 사상 단절을 표출시켜 준
작품이다.

주인공 지미는 과거를 분노의 눈으로 바라 보고 현재와 미래를 환경과
공허로 느끼는 전후세대의 기성제도에 대한 반항적 기질을 대변한다.

그의 분노는 전후사회의 진부한 인습, 복지국가체제하에서도 계급적 지배가
횡행하는 사회를 향한 것이다.

앵그리 영멘 작가들로는 존 웨인, 킹스레이 에이미스, 아이리스 머독,
도리스 레싱등 소설가와 평론가인 콜린 윌슨이 있으나 앵그리 영멘이라는
호칭이 "성난 얼루로..."의 표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오스본의 작가적
위치는 더욱 우뚝해 졌다.

1929년 런던에서 태어난 오스본의 벨모스트대학을 중퇴한뒤 저널리트
배우로 활약하면서 19세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26세때 쓴 "성난 얼굴로..."가 56년5월 런던의 로열 코트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정체된 연극계에 버드너 쇼 이래 최대의 충격파를 일으키면서 사회비판연극
의 새로운 분수령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뒤 그는 "연예인" "평사복을 입고" "나를 위한 애국자" "현재의 시간"
"암스텔담의 호텔"등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64년 공연된 "인정 받을수 없는 증언"만이 "성난 얼굴로..."이후 최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타계했지만 그가 연극계에 남겨준 사회비판사로는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