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 독일의 정치/경제적 통일방안과 시사점 (중) ]]]


경제적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동서독간의 제1차 국가계약에
의해 지난 90년 7월에 발효된 "경제.사회.통화동맹"(이하 "통화동맹"으로
약칭)의 설립에 관한 논의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들수 있다.

"통화동맹"은 일정시점(1990년 7월1일)을 기하여 동독의 경제.사회.통화
체제를 서독의 그것에 일치시킨다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였다.

서독정부가 동독정부에 대해 "통화동맹"의 조기실시를 제안한 이유는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될수 있다.

첫째 서독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동독주민에게 동독에 머무르는데 필요한
경제적 유인(incentive)을 제공함으로써 서독으로의 대량이주를 막고, 이로
인해 야기될 제반 사회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둘째 당시에는 동독경제의 붕괴가 목전에 다가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동독의 국가재정도 급증하는 대외채무로 인해 황폐화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셋째 동독지역에 보다 양호한 투자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동독으로의 신규
투자를 촉진시키는 것이 동독경제 재건의 관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끝으로 "통화동맹"이 발효될 경우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통일국가의 형성이
보다 용이한 것으로 판단되었다는점 등을 들수 있다.

"통화동맹"의 제안과 이의 조기실시는 동서독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

동서독내의 주요 세력들은 동독의 경제적 붕괴가능성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이 의견일치를 보고 있었던데 반해 이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론에서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당시 동독 지식인중 일부 세력은 시장경제의 도입보다는 사회주의경제
체제의 틀안에서 이를 개선함으로써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서독의 주요 여당정치인들은 동독의 경제체제가 완전 굴복했으며
따라서 시장중심적 계획경제(Marktorientierte Planwirtschaft)보다는
급격한 경제개혁 만이 동독의 경제재건과 동서독간의 "통화동맹"창설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임을 제시하였다.

"통화동맹"의 조기실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동서독간에 존재하는 현격한
실질임금격차가 "통화동맹"의 성공을 방해하는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거나 "경제동맹"과 "통화동맹"을 동시에 실시하기 보다는 일정기간
동안 "경제동맹"을 실시한후 "통화동맹"을 실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경제.사회.통화동맹"은 90년 7월1일자로 발효되었다.

이에따라 동독에서는 서독의 선진화된 경제 통화체제가 그대로 적용되게
되었다.

"통화동맹"은 그 구체적인 실시에 있어서 동서독화폐의 교환비율을 기본적
으로 1:1(부분적으로는 2:1,평균적으로는 1.68:1로 집계됨)로 결정함에 따라
동독마르크가 실질적으로 300%이상이나 평가절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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