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규 <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

경쟁체제화 선진화 국제화 그리고 세계화..

지금 한국중소기업에는 환경자체의 불확실성은 물론이고 개념들조차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어 그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어느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

중소기업문제를 인식하는 전통적 학설은 거시경제정책이나 중소기업정책,
그리고 중소기업경영전략의 철학적 기초가 되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중소기업존속필요론 중소기업잔존론 최적규모론
고유분야론 등의 입장이다.

자유경쟁의 모델이라고 믿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소기업 존재는
그 자체가 자유경쟁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미국 자유기업제도와 민주주의의
바탕이라는 시각에서 정책을 발전시켜 왔다.

즉 중소기업의 소멸은 자유기업제도와 중산층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대등조건하의 자유경쟁을 억제하는 독과점에 대해 대자본의
자유를 제한하고 중소자본의 자유를 확보하여 왔다.

미국에 있어 중소기업문제 인식은 크게 4개의 스펙트럼으로 이해된다.

첫째 아메리카드림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중소기업으로 이런 관점에서
민주주의 발전, 독립경영자 육성과 영웅화, 중소기업권리선언, 반독점법
그리고 반불공정거래법 등이 다루어져 왔다.

둘째 미국 꿈의 실현이라는 시각과 대응되는 관점에서 현실의 사회정책적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중소기업이다.

기회균등법, 가난과의 전쟁,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임금.근로조건의 격차,
고용문제 등에 대한 대책이 이런 범주에서 다루어져 왔다.

셋째 경제의 활력소로서 중소기업이다.

혁신의 주도자, 모험기업, 전문화, 적정분야, 경쟁적 도급구조 등이 이런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넷째 꿈과 현실을 중개하고 분산되기 쉬운 중소기업의 힘을 모으고 그들의
요구를 실현시키려는 측면의 중소기업의 정치역학적 관점이다.

정책형성 로비활동 공정과 평등을 촉구하기 위한 권리주장활동들이 활발
하게 보장되고 신장되어 지고 있는 것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

독일 영국 일본등의 경우도 각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특성을
달리할뿐 중소기업문제의 접근은 자본주의, 자유경쟁제도의 원천으로
중소기업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책철학을 견지, 발전시켜 오고 있다.

한국중소기업문제에 관한한 유감스럽게도 중소기업정책과 전략의 철학을
제시하는 학설이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

중소기업정책수단의 수명이 너무 짧고 역사성이 없는 것도 연구해야 할
우리들의 탓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소기업정책이 전개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세계화
를 향한 중소기업, 유관단체, 그리고 정부역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의 중소기업 위상변화에는 분명 위기적 요소들이 많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중소제조업 기준으로만 볼때도 전체적으로는 사업체수가 지속적 증가를
하여 왔으나 구조적으로는 1988년을 분기점으로 중규모기업들이 마이너스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그 추세 또한 작은 규모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의 광공업통계조사에 따르면 1992년도에는 20인미만의 소기업을 제외
하고는 모든 규모의 중소규모제조업체수가 마이너스 증가세로 접어들어
20인미만 소기업이 2,900여업체 증가함으로써 전체적인 중소제조업의 위상이
증가된 것이라는 명목을 지탱하여 주고 있을 뿐이다.

최근 중소기업의 부도업체수보다 신설법인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구조조정과정의 한계기업 도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나 신설법인의 경우도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고, 비제조분야 창업도 생산활동과 연계된 유통분야
보다는 소비성 서비스분야로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중소제조업의
위기적 조짐을 심각히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나 전략의 제시는 실효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임은 명백하다.

중소기업의 고용흡수력도 자동화나 기술혁신에 따른 노동대체효과 이외의
중소기업존립자체에 위기적 증세로 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80년대 초 중소제조업 업체당 31.8명의 고용수준이 92년에는 25명으로
줄어들고 중규모사업체수는 계속 감소하고 창업을 통한 소기업 역시 절대
수도 부족하거니와 소비성 서비스분야로 확대되어 간다는 사실은 구조조정
과정의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고용흡수기반으로서의 중소기업 위기를
시사한다.

한국경제의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위기적 증세의 하나이다.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생산성은 1988년을 분기점으로 대기업과의 격차가
확대되어 와 92년 통계상으로도 대기업수준의 47%로 까지 벌어졌고, 임금
수준 역시 대기업수준의 66.7%수준으로까지 격차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경영지표에 있어서도 1987년 1988년을 분기점으로 다시
둔화추세로 돌아섰으며 92년까지 지속적인 상대적 약화경향을 보여와
93년에 이르러서야 주춤한 상태로 판단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도 자유경쟁을 전제로 한 중소기업의 유효한 경쟁력강화
수단으로 인식되고 발전시켜 오고 있는 중소기업조직화(중소기업협동조합
등)도 제한경쟁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시각에서 관계법제도
정비의 대상이 되기까지 있는 현실이 오늘의 중소기업위상이다.

중소기업의 존재자체는 경쟁의 원천이다.

지금까지의 정부역할을 진실로 재평가해 보고 적정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선진화 국제화 세계화에서 1등이 되는 것은 모든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소망이다.

그러나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경쟁의욕과 세계화의지가 무엇보다
살아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철칙이며 이를 가능케할 환경조성은 정부의
역할에 속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