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

내년이후의 경제가 우려된다.

경기의 흐름이 내년하반기부터는 역유할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WTO출범
남북관계등 앞으로 우리경제에 밀어닥칠 파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도 경제정책은 대내외 여건변화를 수용하면서 우리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경기는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상승국면에서의 경기특징은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
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첫번째 특징은 경기양극화이다.

중화학공업부문은 수출을 중심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경공업부문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음부도율은 18년만에 최고수준인 0.20%(8월)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 각 부문의 유기적 관련이 깊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국내 산업간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낮아서 몇몇 업종의 활황이 다른 산업
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경상수지악화이다.

지난 9월까지의 무역수지적자폭이 통관기준으로 5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대일무역수지적자폭은 사상 최고치에 달하였다.

무역외수지도 여행수지 악화로 적자를 기록하였다.

경상수지 악화는 경기상승의 효과가 수입과 해외여행의 증가를 통해 밖으로
유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가지 경기특징은 아직 산업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품의
경쟁력도 취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일부 부문에서의 경기호황이 전 산업부문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높은 수출증가율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경기상승에 따른 소득증대가 외국의 소비재및 자본재 수입으로 연계
되는 것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커다란 물결이 밀려올 것이다.

첫번째는 WTO의 물결이다.

내년 1월에 출범하게될 WTO체제는 관세인하를 중시하던 과거 GATT체제와는
달리 전면적인 시장개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가 단일시장화되는 것이다.

시장이 단일화되면서 세계무역은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 어느정도 득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WTO체제는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이념대립 대신에 경제전쟁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경쟁력 강화외에는 대안이 없다.

두번째는 남북경협의 물결이다.

남북경협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경수로 지원같은 경제적 지원이 포함될 전망인데다 북한의 정세가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 우리가 부담해야 할
통일 비용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남북경협의 득실계산및 정책 내용은 통일비용을 포함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선거의 물결이다.

내년의 지자제 선거에 이어 내후년에는 국회의원선거가 있으며 그 이듬해
에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될 것이다.

선거는 과소비를 부추기고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경기 변동(political
business cycle)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정책적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정치가들의 각성과 국민의식의 성숙이 절실히 요청된다.

네번째는 자본자유화의 물결이다.

자본자유화의 확대를 통해 국내에 유입될 것으로 추산되는 해외자금은
내년에만도 약 15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해외자금의 유입은 가뜩이나 어려운 내년도 통화관리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통화관리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원화의 평가절상을
사용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이다.

원화절상이 또 다른 해외자금의 유입을 유인하고 이것이 다시 원화절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는 건전한 자금보다는 핫머니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남미의 경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할 경우 국가경제가 뿌리째 뒤흔들릴 수도 있다.

경기특징에 나타나는 우리경제의 문제점, 그리고 향후 우리경제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시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경제 체질 강화이다.

체질개선 없이는 경기상승의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밀려올 파도를
헤쳐나갈수도 없다.

경제체질강화는 시장경쟁체제의 확립과 안정기조의 정착을 의미한다.

시장경쟁체제는 경쟁력을 제고시키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조건이며
안정기조는 시장의 가격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
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격통제 사업영역규제같이 시장의 조절기능을
저해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가 철폐되어야 한다.

대신할 정부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감독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더구나 경제체질개선은 오랜 시간을 요하는 정책과제이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할 경우 경쟁력제고와 물가안정같은 정책과제들이
서로 상충될수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경제구조를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
될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