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버지니아에 있는 뉴포트 뉴스조선소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그리스의 선박회사 엘렉존으로부터 4만t급 정유운반선 4척(2척은 옵션),
1억1천2백만달러 어치를 수주한 것이다.

이는 미국조선소를 통들어 37년만의 일이다.

지난 67년이후 미국 조선소들은 외국에서 선박수주를 받아본적이 없다.

군수산업차원에서 해군함정을 건조하거나 자국내 연안 화물선을 만드는게
고작이었다.

이미 산업 주류에서는 비껴나 있었던 것이다.

이날 팻 필립스회장이 선박건조계약을 마친뒤 축배를 드는 사진이 여러
미디어에 오르내린것은 조선산업이 아직 건재하다는 바로 이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동안 미국 조선소들은 상업용 선박을 건조할 기회가 없었다.

생산성과 코스트면에서 일본 한국등을 따를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침체는 8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상업용 선박건조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버린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당시만 해도 37개의 대형 조선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9개로 줄었고, 그나마도 11개 조선소만이 선박건조 계약
실적을 갖고 있을뿐이다.

길이 4백피트 이상의 배를 만드는 도크수도 40%나 폐쇄됐고 근로자도
8만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선업계가 올들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업계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문을 닫느냐 지탱하느냐 하는 생존의 차원이 돼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해군에서 나오는 물량만으로도 명맥은 유지할수 있어 구태어
경쟁이 치열한 상업용 선박수주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

이제 해외루부터의 선박수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돼버렸다.

이같은 업계의 사정을 감안, 국가가 맨먼저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의회는 선주에게 금융을 지원하는 소위(타이틀 11)법안을
개정했고 지난 5월엔 구체적인 시행령까지 만드는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개정안은 자국인에게 한정해서 주던 금융특혜를 외국선주에게 까지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에따라 미국 조선소와 선박건조 계약을 맺으면 누구라도 선기의 87.5%
까지를 25년동안 융자받을수 있도록 돼있다.

물론 정부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한다.

뉴포트 뉴스에 선박을 발주한 그리스의 엘렉존은(타이틀 11)의 혜택을
보게 된 첫번째 외국선사가 된 셈이다.

최근에는 스위스의 사라센그룹이 맥더모트조선소에 다목적용 컨테이너선
30척을 발주하면서 7억2천6백만달러의 융자를 신청했다.

또 의회와 정부는 해사시스템기술연구소를 통해 선박연구및 개발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 봄에는 20개의 조선관련연구소가 2천만달러의 혜택을 받았다.

이러한 정부의 선도적인 지원이 조선업계의 장래를 밝게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업계가 가진 유리한 여건도 많다.

안정된 임금 경쟁력있는 철강가격, 좋은 생산시설 원활한 에너지 공급
교통등의 사회간접자본시설등은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물량이 확보돼 있다.

미국은 죤슨 엑트(Jones act)법에 따라 미국내 연안에서 화물을 싣고
운항하는 배는 반드시 자국조선소에서 건조토록 의무화시켰다.

특히 미국은 선령이 오래된 배들이 많아 앞으로 5년이내 대체수요가
수백척에 이를 것으로 업계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또 90년에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된 해양오염방지법에서는 기름을 실어
나르는 모든 배의 선체를 이중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오는 2015년까지 모든 정유운반선은 단계적으로 이중선체로 바꿔야
한다.

이 물량 또한 조선업계엔 큰 호재가 아닐수 없다.

현재 확보한 물량도 만만치 않다.

9개의 조선소에서 70척의 해군함정을 건조중이다.

앞으로 5년이내에는 군수산업 물량이 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공장기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량은 보증돼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조선소 자체의 자구노력도 활기를 띄고 있다.

아본데일 베들레헴 뉴포트 뉴스 제너럴 다이나믹스등 소위 4대 조선소를
중심으로 외국사와의 기술제휴등 경영합리화에 온힘을 쏟고 있다.

기술제휴선으로는 일본의 미쯔비시 미쯔이 히다찌 NKK IHI 스미또모
가와사끼등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뉴포트 뉴스는 히다찌와 기술협력계약을 맺었다.

미조선협회의 캐롤 파돈부회장은 "조선업계가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나름대로 생산성향상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당장은 성과가 없다해도 머지
않아 강력한 조선국으로 부상할수 있는 저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이같은 장담만큼이나 조선소들의 고민도 많다.

오랫동안 상업용 선박을 건조하지 않은 탓에 자체 표준사양이 없다.

이는 선사들이 가장 꺼리는 부분이다.

조선소 입장에서는 엔지니어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여기엔 엄청난 투자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

게다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선박보즈금지원에 관한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협정이 96년부터 발효되면 금융지원등이 문제로 제기될 공산이
크다.

어쨌든 미조선소들은 조선대국 일본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유럽 중남미 아시아로 뛰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