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1년전인 73년 테니스를 통한 친목도모를 위한 작은 모임이
있었다.

갓 대학에 입학하여 운동을 좋아하는 경기고등학교 69회동기 10여명이
모여 이름도 거창한 청소년테니스클럽(일명 "청크")을 만들었다.

당시만해도 테니스 볼을 전부 수입되었고 국산 테니스라켓도 겨우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라 테니스가 귀족운동시되어 주위로부터 부러움과
따가운 눈총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잦은 데모로 대학이 휴교하면 때는 이때다 하고 담장넘어 테니스장
에서 하루종일 테니스연습에 몰두하였으니 주위에서 좋은 시선으로 봐
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린후 시원한 생맥주 한잔 주욱 들이키는
그 버릇은 2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로
계속되고 있다.

모든 볼 하나하나마다 연구하는 자세로 정성을 들이며 주위의 골프 유혹
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테니스만을 고집하는 외대 이종욱교수가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모임을 리드해 나가고 있으며, 팔보다는 발과 입으로
테니스를 치면서 모임에 웃음을 선사하곤 하는 동국대 한진수교수는 교환
교수로 미국에 체류중이어서 참석을 못하고 있다.

또 우리의 모임에 참석치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멀리 런던에서
가끔 전화를 주는 제일증권 박중환소장, 평소 차분한 성격으로 말이 적으나
코트에만 들어서면 캐논서브와 빨랫줄 스트로크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럭키
그룹 이여수박사, 테니스 엘보우로 상당기간 고생하고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력한 아메리칸 트위스트서브를 구사하며 실수 때마다 "으악"소리를
연발하는 양승찬사장도 빼놓을수 없는 멤버들이다.

잦은 해외출장, 접대등 바쁜 와중에서도 매주 월요일 테니스, 목요일
농구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녹십자 허일섭부사장, 테니스보다 골프를
더 선호해서 그런지 출석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가끔 나와서 정확한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펩시의 신현섭이사, 그리고 건강의 소중함을 강조
하면서 테니스를 통한 건강유지에 노력하는 동서유지 김석수이사가 필자와
같은 동기로서 모임의 주축이 되고 있다.

아울러 과거 무거웠던 몸집을 수영과 테니스로 단련시켜 가벼워진 몸매를
뽐내며 코트를 누비는 외대 조남 교수와 이 모임의 만년 총무로서 모든 궂은
일을 맡고 있는 수출입은행의 안응호박사도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모든 게임
마다 조금도 마음을 놓을수 없는 팽팽한 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때 승률이 가장 높았던 사람중의 하나이었던 필자도 이제는 승률이
하위권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곤 한다.

지금은 각자 여유가 없지만 10년 뒤, 20년 뒤에 여유가 되면 기금을 모아
주니어테니스 아카데미라도 하나 설립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