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는 창설초기부터 한국과 호주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 우리나라
로서는 인연이 깊은 국제기구다.

지난 89년1월 서울에서 열린 한-호정상회담에서 호주의 보브 호크총리가
아/태지역의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정부간 협의장치를 제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이를 적극 지지키로 약속함으로써 출범에 시동이 걸렸다.

출범할 당시에는 ASEAN(동남아국가연합)소속 6개국이 새로운 아.태협력기구
창설에 반대, 주창국인 한국과 호주는 애를 먹었다.

89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호양국이 아세안국가들과
격론을 벌여 APEC각료회의를 개최토록 하는데 성공, 1차각료회의가 11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렸다.

2차각료회의가 90년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것도 ASEAN국가들의 입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차 APEC각료회의에 참석한 초기 회원국은 한국과 호주 미국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와 아세안 6개국(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등 12개국이었다.

출범당시부터 표방한 목표는 "개방적 지역주의에 기초한 경제협력달성"
이었다.

기존의 EC나 ASEAN, 당시 추진중이던 NAFTA와 비교할때 경제블록이 아닌
개방주의를 내세운게 특징이었다.

APEC는 제3차 서울총회를 계기로 한단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회원국이 기존 12개국에서 중국 대만 홍콩을 포함, 15개국으로 늘어났고
APEC발족 2년만에 원칙 목적 운영방식및 조직등에 관한 "서울 APEC선언"을
발표, 비로소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은 특히 이때 중국 대만 홍콩등 3개의 중국을 국제기구에 동시 가입
시킴으로써 국제외교가에 "APEC서울방식"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때까지 중국의 대표성문제때문에 3개의 중국이 동시에 국제회의나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92년 4차회의가 열렸던 방콕에서는 "APEC의 기구화를 위한 방콕선언"을
통해 이 기구가 느슨한 형태의 대화포럼에서 공식적인 국제기구로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상설사무국의 설치, 사무총장등 기본구성원의 선발방법, 기금설치및
회원국간의 분담비율이 결정됐다.

상설사무국설치로 골격을 갖춘 APEC는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5차
총회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층 높아졌다.

APEC를 과거의 장관급회의에서 정상회담으로 격상시킨 점이 APEC의 비중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시애틀회의에서는 무역투자기본선언문을 채택되고 우루과이라운드(UR)의
성공적인 타결을 위한 각료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UR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차회의를 계기로 APEC는 EU(유럽연합)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등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3대축으로 부상했다고 볼수 있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