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세기의 재계를 주도할 전문경영인들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주요 기업들은 고속팽창을 거듭해 오면서 수많은 간판급
경영인들을 배출해냈고 앞으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경영인들의
저변을 확대해 왔다.

오늘날 최고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전문경영인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문
경영인들은 종전과는 비교할수 없는 기업내부에서 훨씬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전문경영인들이 대부분 말단사원부터 오랜 기간의 순차적 승진
이라는 연공서열에 의해 올라선 경우라면 앞으로는 매우 다른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와는 다른 "파격"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마다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는 경영.인사혁신 바람에 의해 벌써부터
발탁인사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를 공개채용방식으로 뽑는 곳도
있다.

"사장=최고경영자"의 등식은 이제 더 이상 성립되지 않고 부사장 전무
상무가 경영책임을 맡는 경우도 흔하다.

전문경영인의 저변과 발탁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고 능력주의가 본격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같은 능력위주의 발탁은 앞으로의 경영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인력기반을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국제화와 기술부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오늘날 간판경영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이현태석유화학회장
이춘림종합상사회장 박재면건설회장 전성원자동차사장 심현영종합기획실장
박세용종합상사사장 김주용전자회장 유기철정공사장 조양래자동차써비스
사장등을 이을 차세대 경영인으로서 부사장 전무등의 임원이 수없이 포진
하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현대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은 모기업인 건설에서 배출돼
여러 계열사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부사장이하급은 대부분 한 곳에서
계속 성장함으로써 전문화가 많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형이 크고 사업부문이 다양한 자동차 건설 중공업 정공등은 부사장만
하더라도 4~7명씩 두고 있고 나머지 계열사들도 대부분 복수의 부사장이
포진하고 있다.

전무 상무급으로 내려가면 더많은 인재들이 각자의 전문분야별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가운데 미래의 주역임을 자임하면서 최고의 자리를 향해
각개약진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반세기의 경영이념이기도 했던 "인재제일"의 구호에
걸맞게 그동안 뿌리깊은 사원공채제도를 바탕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전문
경영인들을 수없이 배출해 왔고 다른 어느곳보다 풍부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강진구전자회장을 필두로한 경주현중공업부회장 김광호전자사장 신세길
물산사장 이대원항공사장 황선두종합화학사장 황학수생명사장 현명관비서
실장등 지금의 간판급 경영인들을 다수의 대표이사부사장급들이 떠받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초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겨냥한 "개혁드라이브"에
시동을 걸면서 대대적인 인사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국제화 기술부문의 전문성, 개혁성향을 잣대로 삼은 능력위주의 대규모
발탁인사를 공언하고 새로운 경영진구축에 나서고 있다.

삼성의 강점은 일찍이 정착된 사원공채제도에 힘입어 부사장 전무 상무등
임원진이 어느곳보다 짜임새있게 구성돼 있다는 것.

이미 기술부문및 국제화부문의 핵심인력을 중심으로한 대규모 발탁이
이뤄지면서 지금의 간판급 최고경영진을 교체할 차세대 주역들이 서서히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럭키금성그룹은 60년대 공채사단을 중심으로 이뤄진 지금의 간판경영인들에
상당한 변화가 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의 오랜 관행이었던 상식선의 연공서열식 인사에서 탈피, 능력중심의
파격적인 발탁인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간판경영인들은 이헌조금성사부회장 성재갑럭키사장 이희종금성산전
사장 변규칠회장실사장 홍종선금성전선중공업부문사장 이휘영럭키화재사장
정장호금성정보통신사장 이정성럭키금속사장등이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같은 구도의 일대변화가 불가피하다.

구자경그룹회장이 사업단위별 자율경영체제의 확실한 구축을 위해 의도적
으로 전문경영인들을 육성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공개경쟁을 통해 최고
경영자들을 선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위해 인사자문위원회를 두어 사장후계자 후보선발및 육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사장평가위원회를 설치, 사업과제달성현황 사장후계자육성
등 현재 사장의 업적을 평가토록 하는등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차세대
경영인들을 키워 내겠다는 것이다.

대우그룹의 경우 상대적으로 짧은 기업역사로 인해 아직 간판급 경영인의
대부분이 김우중그룹회장과 창업초기부터 고락을 같이 해온 원년멤버들이다.

윤영석중공업부회장 이석희통신회장 이우복그룹부회장등이 그들이고 그
뒤를 이어 배순훈전자사장 서형석그룹기조실장 김창희증권사장 유기범
(주)대우무역부문사장 김태구자동차사장등이 전문경영인진용의 맥을 잇고
있다.

대우그룹에서 앞으로 전면에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목의 대상은
71년이후 입사한 공채군단들이다.

이들은 현재 전무 상무급에 폭넓게 포진돼 있어 최고경영자로의 부상을
겨냥하고 있는 대기세력들이다.

선경그룹도 전문경영인의 육성에 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2000년대 선경그룹은 전문경영인이 주도하고 그룹은 일종의 협의체 성격이
될것이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이미 그룹의 주요경영정책은 주력5사의 최고경영진인 김항덕유공부회장
김승정(주)선경사장 김준웅선경인더스트리사장 안시환SKC사장 정순착건설
사장및 손길승경영기획실장으로 구성되는 사장단회의 멤버들에 의해 대부분
협의 결정되고 있다.

선경그룹의 가장 큰 특징은 차세대 경영진의 면면을 미리 예측할수 있다는
점이다.

각 계열사의 부사장들은 최고경영자로 가는 보증수표와 거의 다름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현재 사장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부사장을 다음 사장으로
키워내는 것이라는 그룹 특유의 사장양성방식에 따른 것이다.

쌍용그룹은 아직 경영전반에서 오너의 역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으나
전문경영인들의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주범 우덕창그룹부회장 손명원(주)쌍용사장 차형동자동차사장 김덕환
종합조정실장등에 이어 차세대 경영인으로서 공채출신및 기술부문 전문가들
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전무이하급 임원들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4~5년후면 이들에 의한 경영진의 대규모 세대교체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화 롯데 효성 한진 두산등 주요 그룹들의 전문경영인 진용도 오는
2000년대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특히 한화그룹의 경우 최근 경영의 일대혁신을 선언하면서 조기임원
육성제를 도입, 40대사장을 발탁하겠다고 밝혀 유례없는 인사개혁을 예고
하기도 했다.

이같은 발탁중심의 전문경영인 육성은 미래를 대비한 경영혁신의 흐름을
타고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으면서 21세기 재계의 새로운 인물지도를
그려나가게 될것이다.

< 추창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