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상무국 장관인 오쿠마 시게노부와 정토도독인 사이고 쓰쿠미치가
나가사키에서 3천6백명의 군사와 군함 5척, 운송선 10척을 집결시켜
무기와 군량등 원정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을때 도쿄에서 예기치않은
사태가 일어났다.

서양 여러나라 공사들의 항의였다.

어느날 영국공사 퍼크스가 태정대신인 산조를 그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산조는 속으로 이 자가 무슨 일로 갑자기 나타났는가 싶었으나 정중히
그를 맞았다.

퍼크스는 의례적인 수인사를 나눈 다음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귀정부에서 대만으로 파병을 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예,사실이오"

"파병의 목적이 뭔지요"

"몇해전에 우리 일본의 보호하에 있는 류큐인을."

산조는 류큐인 피살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서요" 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산조는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몇해전에 있었던 그 사건을 퍼크스가 모를 턱이 만무한데 시치미를 뚝
떼고 대만출정의 이유를 물었고 또 자기의 설명을 능청스럽게 푸르스름한
눈알을 번질거리며 듣고있질 않은가.

그리고 그런 문제는 외무경을 찾아가 얘기를 하는게 순서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위계상 태정관의 최고 책임자인 태정대신을 불쑥 찾아와
들이대듯이 하다니 말이다.

"청나라의 승인을 받고서 파병을 하는건가요"

"승인을 받다니요"

"대만은 청나라의 엄연한 영톤데 승인없이 함부로 침범을 할수가 있나요.
그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오"

퍼크스의 말투는 이제 분명히 항의조였다.

줏대가 약한 산조지만 참을 길이 없었다.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넣으며 내뱉듯이 말했다.

"청나라에 책임추궁을 했소. 그랬더니 총서대신인 문상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오? 대만의 생번은 자기네 통치권 밖에 있으니 책임을 질수가
없다고 대답했소. 그것은 곧 우리가 직접 가서 응징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고 뭐요. 간접적인 승인이나 마찬가지 아니오"

"참으로 단순하군요. 그 말을 그렇게 해석하다니."

퍼크스는 푸르스름한 눈에 웃음을 내비쳤다. 냉소였다.

"통치권 밖이라는 말을 그럼 어떻게 해석한단 말이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외교수사지, 직접 응징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거요"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