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팔산테니스클럽 연합회"

위클럽은 글자그대로 테니스동호인의 모임체이지만 운동보다는 지역화합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있는 클럽이라 할수 있다.

앞날의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세계속의 한국을 이룩
하는데는 무엇보다도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과 사시풍토를 광정하고 온국민의
진정한 화합과 단결을 다지는일이 급선무라고 공감한 동호인들이 그일에
솔선수범하고자 만든 모임체인 것이다.

지난 85년 광주에서 부산검사장으로 전임해간 필자는 5.18민주항쟁의
격랑속에서 증폭된 지역감정이 심각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통감하고 가까운
이웃부터 이를 해소해 나가기 위하여 선도위원의 교류와 아울러 영호남
테니스교환경기를 추진했다.

부산클럽(회장 박우영 총무 서정웅)이 광주클럽을 먼저 초청하고 86년도
에는 광주 8.8클럽(회장 한경수 총무 황인빈)이 답례초청하는 형식으로
교류전을 가졌는데 그것이 팔산클럽의 모체요 효시가 되었다.

87년에는 필자가 서울(서울 고검검사장)로 오게 되어 화곡동에 있는
8.8실내코트에서 김학영사장과 자주 어울렸는데 그모임을 바탕으로 서울
8.8테니스클럽(회장 선병석 총무 강근준)이 결성되었다.

이때부터 서울 부산 광주가 번갈아 초청경기를 주관하게 되었는데 주관
클럽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정성을 다한 써비스를 제공하여 방문선수
일행을 환대하는데 서울의 곽만석회장부인 광주의 이완석회장부인의 음식
솜씨가 정평이 나있다.

지난91년 서울주관의 대회시 목동테니스코트 식당에서 전국팔산테니스클럽
연합회가 탄생되었는데 초대회장에 박우영회장 사무국장에 마이남회원이
선출되었다.

"팔산"이라는 명칭은 광주 서울의 8.8클럽에서 "8"자를 부산에서 "산"자를
각각 따와 조립한 것인데 그것은 팔도강산의 줄임말도 되는 것이다.

1993년10월 전남 순천에서 개최된 팔산대회에는 대전클럽(회장 박중균)이
새로히 가담했을뿐만 아니라 주관클럽고문인 경찰서장(정락진)의 세심한
영접계획과 융숭한 대우로 모든 회원에게 큰 감명을 안겨준바 있다.

팔산의 경기는 승패보다 신사도와 회원간의 우의를 다지는데 주력하고
여흥프로가 있어 노대와 춤으로 축제의 한마당이 펼처지는데 이때에는
이도미회원이 단연 돋보이는 것이다.

모든 회원과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합창과 군무로 형제애를 다짐하면서
우리는 서로 하나임을 피부로 실감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