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 서울대교수/국제경제학 >

얼마전 남북한 경협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한독학술회의와 국내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두 회의의 토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북한 경제협력의 추진이 현 단계
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될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우선 "통일을 위해서는 "인내"와 "준비"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독일대표의
말은 퍽 인상적이었다.

독일 통일이 인내의 산물이기는 하나 충분한 대비가 뒷받침되지 못한데
대한 반성으로도 들렸다.

지난 7월 독일에 들렀을때 많은 학자들은 통일과정에서 통화 동맹을
서둘러 체결한 것과 구동독경제를 과대평가했던 것이 중요한 실책이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긍.부정적인 측면이 엇갈리기는 하겠으나 양독간 왜곡된 통화가치가
단.중기적으로 고임금 실업 경쟁력약화등을 가져오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동독내 자본축적이나 기술수준이 예상보다 크게 못미쳐 오늘날 독일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남북한 관계를 70~80년대와 비교할때 최근 양국의 입장이 뒤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당시 북한은 선정치, 후경제의 주장을 내세워 정치적 통일에 관한 논의없이
경협문제를 논할수 없다는 고집으로 일관했다.

남한측의 기능주의적 접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였다.

최근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오히려 남한이 정치 군사적
고려를 우선시킨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또 미국과 핵문제에 관한 정책조율의 결과이겠으나
북한측은 경제협력을 여기에 연계시키는것 같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얻어진 결론은 김정일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나 이 체제수호적 개방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개방"과 표리관계에 있다고 믿어지는 "개혁"이 급속히 추진될것
같지는 않으며 "개방"마저도 부문별 지역적으로 한정될 전망이다.

여기서 독일의 경험이 시사하는바와 같이 "인내"하더라도 "준비"할수 있을
만큼 북한경제를 충분히 알수없는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단지 단편적인 정보, 그것도 2차자료를 통하여 또는 전언에 의하여
북한사회에 대해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이 최고조에 달한 경제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간접적으로 남한에도 일부지역에 대한
투자제안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경협의 비중을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에너지 도입에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및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의외로 빨리 진행할 가능성도 크며 핵카드
의 연장이 여기까지 미칠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연락사무소-수교의 수순이 단축되고 일본의 북한진출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

한국이 이 과정에서 마저 소외되거나 뒤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국내에서는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섭력은 물론 이를 뒷받침 할수 있는 정책수단도 크게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북한내 경제적 여건을 고려할때 한국은 북한에 자본
기술등을 제공하는데 있어 어느 국가보다도 유리한 입장에 있다.

또 구체적으로 이를 실현할수 있는 여지도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핵문제가 중요하나 남북한간 경제협력을 추진한다고 이 양자가 분리
되는 것만은 아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분리"나 "연계"라는 말 자체가 상대적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제협력이 체계적으로 확대된다면 이것이 오히려 핵문제에 대한
남한측의 지렛대로도 사용될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남북한 관계개선, 접근, 협력및 통합과 관련된 정책은 일관된
기조로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내를 갖되 적절한 시기를 놓쳐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