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국제화"가 시대적 표상으로 등장했다. 국제화는 문민정부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등 모든 영역의
담론을 지배하며 앞으로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양식 그리고 국가의
역할등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는 국제화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고 이에 다양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논의한후 국제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자세가 합당한지 한번
따져 보고자 한다.

소련및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세계경제가 하나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통합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다.

세계경제의 개방화와 통합화는 국가간의 경제활동에 상호의존을 높이고
동시에 이들간의 무한경쟁을 야기시켰다.

21세기 지구촌은 자본의 무한대 팽창욕구와 정보혁명의 결과로 점차
국경을 초월하는 "글로벌 경제권"으로 재편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첨예한 경제전쟁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위한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국제화의 "경쟁"차원이다.

또한 국제화는 국제적으로 용인될수 있는 규범 관행 제도및 질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국제화란 한나라가 세계 속으로 통합되어
들어가면서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준칙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 준칙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선진국들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 후진국
경제체제를 지배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환경보호나 근로조건을 무역과 연계시키려는 GR나 BR, 혹은 무역규범
준수에 보다 강력한 구속력을 갖게되는 WTO의 출범 자체에도 이러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자유무역의 확대에 의해 큰 이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를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이것이 국제화의 "적응"차원이다.

국제화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
추세에 성공적으로 편승한 나라나 산업부문 직종 계층이나 개인은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나 부문, 집단, 개인은 크게 낙후되어
"앞선자"와 "뒤진자"간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앞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생산과정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포스트포디즘의 물결을 타게되면 노동시장은 핵심노동자와 주변노동자,
성장부문의 노동자와 사양부문의 노동자,성장지역의 노동자와 쇠퇴지역의
노동자등 다양하게 상호중첩되면서 양극화와 파편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화을이 어두운 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국제화 "극복"차원이다.

국제화를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맥락에서 경쟁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피할지 모르나 좀 먼 눈으로 보면 국제화를 경제를 뛰어넘는 총체적
삶의 질 차원으로,또 국제협력과 포지티브섬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문제를 비롯하여 인구 에너지 식량 무기등 인류의 공존을 위한
국제협조의 지평은 무한히 넓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삶의 질에 관한 전인류적 관점을 21세기의 세계관
으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국제화의 "승화"측면이다.

이처럼 국제화는 경쟁 적응 극복과 승화의 여러 차원을 함께 지니고 있다.

김영삼문민정부는 단기적 관점에서 경제우선 생산력제고의 경쟁차원과
국제규범의 강요된 수용이라는 맥락에서 적응의 차원에 역점을 두고
있으나 아직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야할 국제화의 극복과 승화차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현정부는 옛 군부권위주의시대부터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
오던 "성장 복지"2분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예산편성안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은 약 5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문별 사업비를 보면 사회복지및 국가유공자지원이 2조8,000여억원으로
그중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특히 영세민 생활보호비는 불과
5,200여억원으로 작년대비 약 7.9% 증가했다.

이 증가율은 내년도 일반회계예산증가율 15.8%의 꼭 절반수준으로 다른
부문의 증가폭과 비교할때 빈약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영세민 생활보호비는 실제로 최저생계비에 훨씬
밑도는 형편인데 그나마 우선순위에서 이처럼 크게 밀려났다.

이는 다름 아닌 구빈사업비로서 서구의 복지국가가 현대적 사회보장제도
를 도입하기 이전에 국민의 최소한의 생존수준을 지켜주기위해 이미
수세기전부터 실시했던 가장 원초적인 제도이다.

그러기에 마음이 더 무겁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우리가 세계의 선진국
경제그룹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지만 그
내실에 있어서는 취약하기 짝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분명 후진국
임에 틀림없다.

지난 개발연대에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많이 벌어졌고 그에 따른
발전위기는 아직도 상존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나 얼마간 형편이
좋아진게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화시대에는 성공한 이에게는 엄청난 과실을 안겨주는
대신 실패한 이들은 아예 나락으로 밀쳐 버리게 된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불균형을 줄이고 정치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일에 배전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먼 눈으로 볼때 국가경쟁력은 사회적 연대성의 함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