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3일 유공의 신임 조규향사장이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초급장교스타일의 짧은 머리에,멜빵을 걸친 조사장이 신상에서부터
경영에 이르기까지 격의없이 얘기를 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열린 신임사장과 기자와의 간담회는 화제거리였다. 여느회사라면
의례적이었을 이 행사가 이처럼 입에 오르내린것은 김항덕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12년동안 지켜온 불문율이 깨졌기때문이다. 김부회장은
사장재임기간중(84.3-93.12)기자들과 공식으로 만난적이 없었다.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로매스컴에 오르내리는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조사장의 이날모습은 민주적 신사적 합리적이면서도 서구적인 분위기를
트레이드마크로 해온 유공스타일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것이었다.

이같은 사풍은지난 62년 대한석유공사로 출발한 이래 미걸프사(70-79년)
선경그룹으로 경영주체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이같은 분위기에 걸맞는 인물이 바로 김항덕 부회장이었다. 그는 공사
외국합작회사라는 특성으로 형성된 종전의 분위기를 선경그룹의 문화와
접목시키는역할을 했다. 그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신화적인(?)기록을
만들어내면서 사실상유공의 색깔을 대변해왔다.

김부회장은 대한석유공사가 유공으로 간판을 바꿔단 80년부터 외국회사및
해외근무등을 통해 쌓은 민주적 합리적이면서도 "지독한 장사꾼"기질을
활용,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39세에 유공의 수석부사장자리에 올랐다. 최종현 사장에 이어 84년
사장에 오른 다음 만10년동안을 장수했다.

그는 특유의 "승부사"기질로 정제 석유화학 윤활유공장등을 잇따라 준공,
인수당시 1조원남짓하던 매출을 13년만에 5조3천억원규모로 키웠다.
덕택에 올초에는 유공의 실세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부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대성할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세일즈맨정신
때문. 그는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69년 (주)선경으로 옮겨와 10년동안
직물수출을 진두지휘했다.

76년 아주지역본부장을 시작으로 하여 구주지역본부장을 마칠때까지의
3년5개월 동안 그는 SK(선경)의 지독한 장사꾼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구주지역본부장때 그는 런던의 직물시장 도매상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가 인사하는 독특한 세일즈기법으로 영국상인들의 콧대를 꺽는데
성공했다.

영국에서기반을 닦자 그는 스웨덴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런던에서 아침
첫비행기로 스톡홀름에 도착,거래선을 만나 설득하고 밤12시에 다시 런던
으로 돌아왔다. 이같은 "당일치기"를 1년이상 계속했다. 그는 이같은
프로근성으로 직물수출의 물꼬를 튼 것이다.

그의 이같은 근성으로 최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신화"창조에
나선다. 그는 서울상대동기인 손길승경영기획실장과 작업해온
대한석유공사인수를 성공적으로 매듭지으면서 급부상한다.

최회장은 상무가 된지 채1년도 안된 39세의 그를 파격적으로 대표이사
수석부사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그는 부사장시절 현물시장에서의 원유구입이 유리해지자 값이 비싸고
조건이 까다로운 장기계약분을 줄이기 위해 산유국으로 달려갔다.

산유국원유도입물량을 줄이는 것이 곧 원가를 절감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3개월동안 협박을 하고 때로는 설득도 하면서 산유국
관계자를 결국 굴복시켰다.

그는 언제나 조정역이었고 협상의 명수였으며 철저한 장사꾼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개인적인 부탁은 받아주지 않는 원칙주의자
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조사장은 김부회장의 이같은 스타일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는 몇
안남은 공채1기로 거대조직을 이끄는 맡형이다. "할아버지"로 통하는
자상한 스타일로 조직의 융화력을 높인다. 그는 타고난 관리능력으로
경영의 내실를 다져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사장은 종합기획실장시절 김정석전무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면서
생긴공장장자리까지 맡으면서 주변의 놀라게 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새벽부터 공장을 돌면서 자재관리 주변의 정리정돈등을 점검했다. 1년
사이에 울산공장이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정치학과에 비엔지니어출신 첫공장장인 그가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공장관리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것이다.

총공장장을 맡고있던 2년여동안 그는 매주 금요일 본사로 올라와
종합기획실장역까지 잘 수행했다. 공장의 노무부장을 거쳐 본사
인사부장 인사 총무담당 이사 상무 전무까지 거치면서 쌓은 관리경험이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인사 총무담당상무때인 지난80년에는 본사와 울산공장간 과장이상
간부사원들을 교류시키는 인사틀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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