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한묶음을 사다가 책상위에 꽂고보니 가을이 성큼 내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고질병이 재발하듯 문득 여행에의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 가을,나는 여행보다는 침잠을 해야 한다.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지난 봄은 몹시 고달프고 행복했다.

이 가을엔 여행보다 흐트러진 삶의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내것에 대한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금년에도 나는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서 참으로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이제는 벌써 앨범속에 하나의 진한 그리움으로 새겨져 있는 그들의 삶의
모습은 이제 의미있는 등불로 내삶을 비추리라.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은 어디에 살든 똑같다는 것을 느꼈고, 그리고 그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도 재확인 해보았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총리인 여성총리 탄수실레르여사가 이끄는
터키에서 만난 신부 이크누르를 잊을수 없다.

그녀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차를 태워주던 택시기사인 징기스에게 소위
보쌈을 당해 결혼한 젊은 여성이었다.

이스탄불의 위스크다르 항구가 낭만어린 곳이라는것 쯤은 터키에 가기
전부터도 유명한 터키민요 "위스크다르"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여성이
총리를 지낼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높은 나라에 아직도 보쌈신부가 있다는
것은 나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침 출근길에 그녀는 택시에 태워진채 그대로 남자의 고향으로 끌려가
며칠을 보낸뒤 결국은 결혼을 승낙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난히 착한 남편 징기스를 보며 결국은 사랑의 묘약이 작용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터키에는 아직도 정조관념이 이렇듯 건재하다는 것을 똑똑히
실감할수 있었다.

아울러 그녀들의 머리에 씌워진 하얀 차도르와 함께 이슬람 율법을 배우는
코란학교에서 받았던 순결한 감동은 아직도 경이로운 기쁨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터키 여행의 여독이 끝나기도 전에 태양의 나라 멕시코로 떠났었다.

밤낮없이 한달여를 취재하는 초강행의 여행이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올리비아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유카탄반도 매리다시의 여성축구선수이기도 했는데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매리다는 용설란의 일종인 애니깽밭으로 유명한 곳으로 90여년전 우리나라
의 슬픈 이민역사의 한이 서린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곳 주도인 매리다시의 중앙광장에 좌판 하나를 놓고 아르바이트로
여행안내를 겸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또하나의 잊을수없는 여성은 아이를 생기는대로 끝없이
낳은 소년 레패의 어머니를 꼽지 않을수 없다.

우리에게 피라미드발굴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따라나섰던 아홉살 먹은 소년
레패의 어머니는 14명이나 되는 아들과 딸을 주르르 세워놓고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그러한 그녀에게서 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의 한 모습을
엿보았다.

멕시코는 스페인지배때부터 시작된 독실한 가톨릭국가여서 낙태가 금지돼
있을 뿐만아니라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레패의 어머니같은 시골
여인들로선 그 비용을 감히 엄두도 못낼것 같았다.

우리나라보다 스무배나 넓은 땅의 멕시코여인들은 기실 모두가 다산의
여인들이었는데 큰 고뇌나 걱정없이 생기는대로 아이를 쑥쑥 낳으면서 그저
태양아래 착한 존재로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가을, 이 땅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안으로 익어가는 가을의 구도처럼 내밀한 사랑으로 가득찬 여성의 모습을
제일 먼저 떠올려 본다.

화장이나 하고 소비나 즐기면서 이 가을을 보내기엔 이땅엔 할일이
너무나도 많고, 그리고 우리의 생은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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