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레저스포츠, 여가선용 취미등 여러가지로 규정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등산은 별다른 계획이나 장비도 없이 그냥 산이 거기에 있기에
무작정 오르는 식이다.

고등학교 3학년 추석무렵,이리 남성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나는 향후
진로에 대해 요즘말로 "고3병"을 앓고 있던터라 머리도 식힐겸 친구
정성환과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이것이 지금까지 20년 넘게 계속되고있는 무작정 산행의 시작이 됐다.
오전에 버스로 출발, 무주구천동으로 향한 우리는 오후 늦게 구천동
계곡에 도착했고 내친김에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은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밤보다 더 어두워보였다. 참 오길
잘했다는 편안감을 주었다. 몇시간쯤 지나자 단풍빛도 까만 어둠에 가려
보이지않고 뒤늦게 하산을 시작한 우린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이러다가 객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고
피로와 허기가 겹쳐 졸음이 쏟아져 왔다.

가까스로 기운을 차려 하산을 재촉하던중 꿈결처럼 백련사의 범종소리가
반가운 새벽여명과 함께 우리의 귓전에 들려왔고 마치 몽유병자처럼
우리는 그곳으로 이끌려갔다.

플래시를 든 공양보살님이 간밤의 고행을 다 지켜본듯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보살님은 우리를 부엌으로 데려간뒤 공양전이라며 누룽지를
물에 끓여주셨다. 우린 눈깜박할새에 먹어치운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드렸다.

학교를 졸업한후 공군에 지원한 우리 둘은 입대 며칠전 한라산등정을
계획하고 낡은 군용텐트까지 구했다. 그러자 익히 우리의 덕유산무용담을
알고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 가세하겠다고 해 아예 "크로바등산대"(당시
히트곡이 바로 "네잎크로바"였음)라 이름을 짓고는 산행을 즐겼다.

군대를 제대하고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내삶에 큰
용기를 던져주곤 한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가 레저이벤트회사라서 가끔씩
서바이벌게임에 참여해보지만 그때만큼 실감은 덜한것 같다.

그때의 멤버들은 지금도 "크로바등산대"라는 이름아래 만남을 유지하고
있고 무작정 등산관행은 자연스레 두달에 한번꼴로 실시되고 있다.

초대회장은 필자가 맡았고 현재 회장은 윤석문씨(대한유통대표) 정성환
(자영업), 이정민(홍콩오리 한국지사장), 이종석(선일기기(주)차장) 등
죽마고우 5명과 그 가족들이 모두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