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 웅 <현대경제사회연 원장>

최근의 경제내외적인 여건변화는 하반기 국내경제에 큰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다. 경제외적인 변화는 갑작스런 김일성의 죽음이고 경제
내적인 변화는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이 두자리 숫자로까지 떨어진
급격한 엔고의 진행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당장은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우선 김일성의 사망은 정치.사회.외교면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그 시점이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있던
때여서 국민들의 심리적 혼란은 더욱 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전반에 걸친 충격에도 불구하고 경제부문은 예상외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외적인 여건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및 외환시장에서의
가격 지표들이 동요를 보이지않고 있으며 주식시장도 충격 하루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또한 외국인 주식투자나 우리나라의 해외발행채권
가격같은 "컨트리 리스크"를 반영하는 지표들도 별 변동이 없다.

김일성사망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이처럼 미미한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후계구도가 김정일체제로 이어지면서 점차 남북한간의 경제교류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김일성처럼 신앙적인 카리스마가 없는 김정일로서는 정권의 안정을 도모
하는 차원에서 우선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이럴 경우에
기존 정치체제의 틀이 유지되는 한 북한으로서는 중국식 개혁.개방정책
외에 별 대안이 없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간의 경제교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간의
경제교류는 우선 남한의 소비재과 북한의 원자재를 중심으로해서 교역이
이루어지고 점차 대북투자의 활성화를 통해 남북경협이 증진되는 방향
으로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가 더욱 냉각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수많은 돌발
변수가 북한정권의 안정성및 정책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경제적 여건변화는 최근 1백엔대
를 뚫고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엔고이다. 당초 엔화가치는 금년말까지
1백5엔과 1백10엔 사이에서 소폭의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일본 정정의 불안이 계속되면서 미일통상협상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나폴리에서 열렸던 G7정상회담에서 달러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정책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음에따라 엔화 환율은 97엔대로 진입하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엔고는 단기적으로 우리제품의 상대적인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엔고가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반드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으로부터의 자본재수입이 크게 늘면서 대일무역수지가 악화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엔고는 일본의 자본.기술과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는 국가간 분업을 통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수도 있다.

또한 엔고를 통해 체질이 더욱 강화되는 일본의 기업들은 더욱 무서운
경쟁 상대가 될 것이다. 게다가 체질이 강화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미래.첨단산업부문에 집중되어 있어 우리나라가 앞으로 이 부문을
육성하는데 상당한 애로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러한 두가지 중요한 여건변화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설정
하는데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가
단순한 경기조절이 아니라 경제체질개선을 통한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의
확충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체질개선은 북한의 개방정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엔고의 장기효과
를 우리경제에 유익하게끔 이끌어가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북한의 개방정책의 효과는 제3국이
아닌 우리에게로 귀속될 것이며 이를 통해 남북한간 분업이 활성화되고
상호이익이 크게 도모될수 있을 것이다.

경제체질의 개선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의 한일 경제협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갖고 있다. 이번 엔고에 대한 일본기업의 대응은 지난 85,86년과
비교할때 현지생산및 국제분업의 확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모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하이테크산업
까지도 포함돼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이라는 국가적 명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에서의 한일 경제협력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체질이 강화돼야 하며 경제정책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하반기에는 경기상승국면 지속에 따른 수요의 증가와 국제원유가의
급등을 중심으로 물가상승압력이 현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가 하반기정책의 초점을 물가안정에 두고 이를위해 통화팽창
을 자제하면서 총수요를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의 추구는 금융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하에서 현재의 경기양극화구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또한 경기양극화가 초래하는 경공업및 소비재부문에서의 경쟁력약화는
이부문이 일차적인 대북수출의 대상품목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남북교역이
확대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경제정책서비스라는 한정된 자원을 몇몇 거시경제지표에 입각한
"파인 튜닝(fine tuning)"에 쏟아 넣기보다는 경제체질개선과 산업구조
조정이라는 장기목표에 집중함으로써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