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측간에서 나온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아가씨는
부끄러운 듯한 웃음이었고, 이토는 꽤나 쑥스러운 그런 웃음이었다.

아가씨는 자기의 치마 속 엉덩이 뒤에 남자를 숨겼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고,이토는 너무 다급해서 그녀의 치마 속에 숨기는 했지만,
일이 끝나고나니 쑥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이토의 말에 아가씨는 살짝
얼굴을 물들였다.

"은혜는 무슨 은혜요"

"아가씨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도리없이 저승으로 갔을 거야.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지. 그런데 이 찻집에 있는 아가씬가?"

"아니에요. 잘 아는 집이라 차를 마시러 들렀어요. 저는 이나마치에
있는 이로하라는 요정에 나가요"

"아, 그래. 이름은 뭐야?"

"고우메라고 해요"

"고우메라. 이름도 귀엽군"

"호호호." 수줍게 웃는 그녀의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얼굴이 정말
이토는 귀엽기만 했다.

"그럼 나는 가봐야겠어. 내가 꼭 찾아갈게. 오늘은 정말 고마웠다구"

"존황양이의 지사죠?"

"물론이지"

"이름을 물어봐도 실례가 아닐까요?"

"나 이토히로부미라고 해" 그녀는 입속으로 이토히로부미를 되뇌어
보고나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오셔야 돼요"하고 다짐을 받듯 말했다.

며칠 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이토는 삿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이나마치의 이로하 요정을 찾아갔다. 고우메는 찾아온 이토를 진정으로
반겼다.

그들의 재회는 그냥 요정에 재차 찾아온 손님과 게이샤와의 만남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기도한 묘한 인연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자, 두 사람은 절로 웃음부터 지어졌다.
반가우면서도 좀 쑥스러운 그런 웃음이었다.

"고우메,지금 몇 살이지?" 그녀가 정성껏 따라준 술잔을 기울이고나서
불쑥 이토가 물었다.

"열여섯이에요. 아직 한교쿠죠"

"열여섯이면. 그렇겠지" 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교쿠"란 "교쿠다이", 즉 화대를 절반 받는다는 뜻인데, 동기를
의미했다.

"고향은 어디지?"

"이곳 시모노세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