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언어는 대내적으론 한 민족을 묶어 주는 매개체일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론 다른 민족과 구별을 하게 해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또한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더라도 국토는 잃게될 망정 언어는 송두리째
앗겨지지 않는다. 그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언어라는 존재다.

그렇다고 한 민족의 언어가 언제나 고유성만을 지켜온 것은 아니다.
한국어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국어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자라 왔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는 국제화시대에 걸맞지 않게 상대국
언어의 침투를 놓고 공세가 한창이다.

지난 2월 프랑스의 자크 투봉문화부장관이 TV 라디오 광고 계약서 세미나
등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의 단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올 가을 의회에
상정하겠다고 나선데 대해 이번에는 영국 하원의 앤터니 스틴의원이
프랑스어의 단어 사용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다음달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출범 이후 정치적 경제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문화적 통합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드러내준 징표인 셈이다.

프랑스어와 영어의 어계를 따진다면 각각 라틴어계와 게르만어계로 구분
되지만 이들 두 언어는 형제간이나 다름없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북부에 공국을 세운 노르망디공이 1066년 영국을 정복한뒤 윌리엄
1세로 등극하면서 영어의 프랑스어화는 시작되었다.

프랑스어에 익숙해진 노르망디인들이 영국의 조정이나 귀족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했던 것이다.

그뒤 프랑스와 영국사이에 백년전쟁(1337~1453)이 일어나자 1362년 영국의
에드워드3세가 의회와 관공서에서의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데 이어 1731년 영국의회가 법정에서의 프랑스어사용을 금지하는
의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무려 700여년동안이나 프랑스어의 지배를 받았다.

그동안에 영국인들은 프랑스어를 영어식으로 개조한 앵글로노르망어를
만들어 냈다. 지금의 영어에서 프랑스어와 비슷한 단어가 80%가까이 되는
것도 그때문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언어이자 2차대전 전후로 제1,2위의 국제어 자리가
뒤바뀐 언어를 가진 나라간의 방어전이기에 자못 흥미를 더해준다.

더욱이 유럽통합의 주축국가들간의 문화전쟁이라는 점에서도 그 귀추가
주목되는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