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염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양지에 가가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박이무 알알밤도 얼지
않게 간수하소"

"농가동회구"에는 이런 "김장노래"가 전해 오지만 지금은 농촌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추억속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플라스틱 김치독이 등장하고 김치공장이 생겨 합성수지주머니로 진공포장
한 김치제품이 계절의 제한 없이 나오고 있는 편리한 세상이되고 보니
그럴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계절이 확연한 나라에는 어디나 소금에 절인 김치 비슷한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한국의 김치와 같은 맛의 발효식품은 없을 정도로 김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고유음식이다.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 가며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그당시의
김치는 소금에 절인 채소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쌀가루와 소금에 채소를 절인 김치를 백제의
수수보리라는 사람이 전해와 그 이름을 따서 "수수보리지"라고 부른
김치류가 있었고 그것이 뒤에 단무지로 변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동치미 나박김치와 장아찌가 널리 보급됐을정도로 한국의
김치는 다양해 졌다.

고추가루를 많이 넣은 김치가 등장한 것은 임난뒤인 조선중기 이후부터
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19세기 중엽에 오면 지금과 똑같은 배추통김치
보쌈김치까지 사용도히기 시작한다.

1712년에 나온 김창업의 "연행일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귀화한 노파가
그곳에서 김치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가 만든
동치미의 맛은 서울의 동치미 맛과 같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벌써 그때부터 한국의 김치는 중국에 건너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아마 그녀가 한국최초의 김치상인이될법하다.

서울에서는 지금 개신교의 한 연구소가 주최하는 "김치신학세미나"가
30여명의 러시아개신교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있다. "김치"를
한국신학의 상징처럼 쓰고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한편 이런 한국인의 자존심과는 달리 일본이 김치의 국제규격승인획득을
위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최근 나돌아 김치종주국인 한국의
김치수출업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김치신학"이란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우리의 대명사같은 김치의 종주국
위치가 흔들린다면 말이 안된다. 뭔가 서둘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