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에노모토는 고료카쿠의 대회의실에 중간급 이상의 사무라이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물론 각료들도 참석케 하였다. 구로다가 보낸 선물을
가지고 주연을 베풀려는 것이었다.

실내에 놓여있는 다섯개의 술통과 다섯마리의 다랑어를 보자, 사무라이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적장 구로다로부터 술과 안주를 보내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실물을 보니 기분들이
착잡해지는 모양이었다.

개중에는 벌써 군침이 도는 듯,

"햐, 그놈의 다랑어 크기도 하다"

"글쎄 말이야. 아직 살아있는 거 아냐"

"아주 싱싱해 보이는데. 술안주로 그만이겠어"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을 꽤나 좋아하는 축들이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시퍼런 다랑어 다섯마리가 다섯개의 술통 옆에
누워 있으니, 그 거창한 안주에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에노모토 총재의 보좌관인 오쓰카가쿠노조가 그 술과 다랑어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는, "여러분, 그동안 전투에 임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오늘밤은 이 술과 안주로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도록
합시다. 비록 적장이 보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
기분좋게 마시도록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대뜸 한 사무라이가 벌떡 일어섰다.

"호의라니요. 당치도 않은 소립니다. 적장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 까닭이
있습니까? 큰일납니다. 틀림없이 그 술속에는 독약이 들어있을 겁니다.
우리를 몰살하려는 간악한 책략이라구요. 그런 줄을 모르고 기분좋게
마시다니 말도 안됩니다"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또 한 사람이 일어나 동의를 하듯 말했다.

"설령 독약이 들어있지 않다 하더라도 계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모두 취하게 만들어 놓고 오늘밤에 총공격을 개시하려는 속셈인지도
몰라요. 그런 음흉한 수작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옳소..."

"맞는 말이오"

"마시면 안됩니다"

여기 저기서 찬동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말없이 에노모토에게 시선을 집중
시키고 있었다. 총재께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궁금한 그런 표정들이었다.

에노모토는 얼굴에 보일듯 말듯 씁쓰레한 웃음을 떠올리고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