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모토가 세운 에소공화국에 대한 신정부의 태도를 확인하자,그때까지
에노모토 일당에 대하여 내심 동정적이었고,기대를 가지기도 했던 프랑스
공사 벌스블륵도 이제는 깨끗이 손을 털어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굳혔다.

프랑스뿐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측도 그 소식을 접하자 에노모토 정권에
대하여 냉담해지고 말았다. 하코다테의 모든 서양 공사와 영사 그리고
공관원들까지가 겉으로는 그저 상대를 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등을
둘리고 만 것이었다.

얼마뒤 유신정부는 하코다테 정벌령을 내렸다. 하코다테정벌 아오모리구치
총독에는 전하코다테 지사였던 시미스다니고고가 임명되었고, 육군참모는
구로다기요다카가, 해군참모는 마스다메이도가 맡아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다.

1869년3월9일, 육해군 합해서 일만명의 군사가 하코다테를 향해 에도를
출발하였다. 막부타도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지 일년삼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 막부세력의 뿌리를 뽑으려는 출진이었다.

열척의 함정이 홋카이도를 향해 북으로 항진해 갔다. 여섯척은 전함
이었고, 네척은 수송선이었다. 기함은 고데쓰마루였다.

에노모토가 자랑했던 가이요마루에 비하면 절반 크기밖에 안되는 군함
이었으나, 배가 온통 강철판으로 뒤덮이다시피 했고, 대포 외에 가드링건
을 갖추고 있어서 가이요마루가 없어진 뒤로는 당시 일본에서 최강의
전함이었다.

후쿠야마 앞바다에서 좌초를 했던 가이요마루는 끝내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다.

네척의 수송선에는 육군의 군사가 가득 실려 있었다. 육군참모인 구로다
는 기함인 고데쓰마루에 해군참모 마스다와 함께 타고 작전계획을 짜면서
가고 있었는데, 에노모토의 일당을 없애기 위해 하코다테로 향하고 있는
그는 심정이 약간 착잡했다.

치러 가는 상대가 에노모토가 아니라면 싶었다.

구로다는 사쓰마 출신이고, 에노모토는 에도 출신이니 고향도 달랐고, 또
구로다는 존황양이 운동에 투신하여 지금은 유신정부의 무장이 되어 있는
몸이고, 에노모토는 막부의 덕으로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해군제독이 된
사람으로 지금은 무너진 막부의 잔당을 이끌고 홋카이도로가서 독립정권을
수립하여 그 총재로 있는 터이니,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적으로
맞서있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구로다는 에노모토라는 인물을 잘 아는 터이라, 장차 새로운
일본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을
없애러 가다니, 애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