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 산업정책연구원 원장/서울대 교수 >

서구의 정책입안자들에게 일본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일 먼저 산업정책을 든다고 한다. 일본경제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게된 원인이 산업정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업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 결과 한국은
가장 빨리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90년 이후 한국 경제는 국제경쟁력악화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무역수지 적자심화 제조업 성장둔화 노동의욕저하등이 그 단적인 모습이다.
이제 정부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전과 정책수단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산업정책연구원은 산업정책에 관한 이론적 틀을 세우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리하여 3년 예정으로 한.일 산업정책 비교
연구를 시작했다. 1차년도인 93년에는 관보를 이용하여 한.일 양국의 주요
산업정책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사용된 관보는
일본에서 1945~91년(47년), 한국에서 1948~91년(44년)사이에 발간된
것이었다.

관보를 분석한 겨로가 두나라 산업정책이 주체 정책기조 그리고 추구하는
목적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주관부서과 한국에서는 주로
상공부이고 일본에서는 통산성이라는 점. 10년 정도의 시차는 있지만 두나라
모두 기계 전자 철강등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을 통해 산업구조 고도화를
시도했다는 점등 한.일 양국의 법규에 나타난 기본적 틀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양국 산업정책의 내용을 좀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차이점을 발견하였다.

우선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세분산업 단위로 산업정책이 추진되었다.
섬유공업의 경우 한국은 "섬유공업시설에 관한 임시조치법" 혹은 "섬유공업
근대화촉진법"이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섬유산업정책을 추진하였다. 반면
일본은 "섬유공업설비 임시조치법"을 기반으로 견인견직를, 면직물 마직물
모직물 메리야스등 섬유공업내 세부품목별로 별도의 정책을 입안 시행
하였다.

둘째 일본의 산업정책은 산업발달과정에서 따라 탄력적으로 개정되는
한시법이었다. 예컨대 기계공업의 경우 한국은 62년 제정된 "기계공업
진흥법"이 86년 공업발전법으로 통합될때까지 24년간 기존의 정책틀속에서
산업정책을 시행하였다. 반면 일본은 56년 "기계공업 임시조치법"으로 출발
하였지만 71년 기계산업과 전자, 정보 산업과의 관련성이 깊어지면서 일
법률을 "특정 전자공업및 특정 기계공업 진흥임시조치법"으로 대체하였다.

그후 78년 다시 "특정 기계정보산업 진흥 임시조치법"을 제정해 특정
기계정보산업에 대한 고도화 계획을 수립하고 생산기술의 향상 합리화등
체계적인 육성정책을 실시하였다.

셋째 일본의 구조정책에는 기업간의 공동행위(카르텔)와 같은 독과점인정
조항이 법률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반면 한국은 공동행위를 인정하는
조항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산업정책이 경제의 형평성
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산업이
한동안 불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국제경제여건이 호전될때 다시 경쟁력을
가질수 있도록 그 산업의 생산능력을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실업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넷째 일본에서는 정책실행과정에서 관련 민간협회의 역할이 두드러짐을
알수 있었다. 예컨대 일본의 섬유산업을 보면 섬유공업 구조개선 사업협회
로 하여금 섬유공업 과잉설비 처리를 담당케함으로써 기업의 애로사항을
수시로 정책에 반영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높히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섬유공업근대화 촉진법"의 제14조규정을 보면 섬유공업근대화협회의 운용을
섬유산업연합회에 위임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기금을 운용할때에는 상공부
장관의 승인을 반드시 받도록하고 있다.

"산업정책은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발의해서 공동으로 시행하는것"이라는
일본식 산업정책관이 극명하게 나타는 부분이다.

다섯째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한 산업정책을 여러부서가 공동으로
주관하는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기업합리화 촉진법의 경우 주관부서는
통산성뿐만 아니라 대장성 운수성 건설성 후생성 농림성등이 함께 참여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였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44년간 시행된 6백
50여개의 정책중에서 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공동으로 발의한 "산업부흥국채법"이 유일한 예외였다.

이상의 분석결과를 종합해볼때 한국의 산업정책은 일본 산업정책의
겉모습만을 모방하는데 그쳤을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정책을 수립
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와 도입이 부족했다는점을 알수
있었다. 다시말해 산업정책이 성공하기위한 관건은 훌륭한 정책을 수립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수립된 정책을 다양한 이해관계조정을 통해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이상 1차년도에서 연구된 결과는 한일산업정책의 내용을 담은 자료집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한일 산업정책 비교연구의 2차년도인 올해에도 1차년도의
작업을 바탕으로 철강 자동차 반도체 정보통신 디자인등 한일양국의 공통적
인 특정산업을 중심으로 심층적인 사례분석연구를 진행시키려 한다. 이와
병행하여 공업발전법 공정거래법 여신관리제도등 주요 법안들도 분석할
것이다.

한일산업정책 비교연구의 마지막 연도인 95년에는 1,2차연도의 작업결과를
종합하여 한국 산업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할 계획이다. 특히 유사한 정책을
채택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여 정부에서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는가를 연구하려고 한다. 이 연구가 완료되는 96년에는 한국 정부가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취할수 있는 바람직한 산업정책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진정 바람직한 산업정책은 한사람의 승자를 가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잘살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되어온 산업
정책의 성공요인을 파악하여 바람직한 21세기를 산업정책을 모색하는 온고
지신이 바로 산업정책연구원이 지향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