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봄날. 할아버지 형제,아들과 조카,손자들 3대가 마을 근처에
있는 고루암에 올랐다. 빙둘러 모여앉은 가운데 시흥이 도도해진 큰
할아버지가 오언절구 한구절을 읊는다. 그뒤를 이어 작은 할아버지가 화답
하고 아들과 조카가 다시 이어 받는다. 손자들도 뒤질세라 척척 받아
넘긴다. 두어차례 돌아간뒤 큰 할아버지가 마무리를 지으면 고루암을 노래
한 한편의 긴 연구의 시가 완성된다.

지금은 부럽기만 한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70여년전 경남의령군
유곡면 "너실마을"에 살던 도학자 입암 남정우(1869~1947)는 이런식의
운치있는 "가족단합대회"를 자주 열어 가족간의 화합을 꾀했다.

한일합방에 항거,단식으로 목숨을 끊은 도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가족화목을 위한 특수한 의식을 만들어 가법으로 지켰다.

그는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전가족을 이끌고 가묘에 참배한뒤 대청에 올라
자신이 먼저 부인과 서로 절하고 남쪽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동.서쪽에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차례로 줄지어 서서 서로 절한뒤 앉으면
두아들이 "시경"에 있는 구절을 낭송한다.

"처자가 잘 의합하면 거문고를 타는것과 같고 형제가 화합하면 화락하고
또 즐기게 된다. 너희 집안 일을 잘이끌어 가고 너의 처자식을 즐겁게
하라" 경남 합천군쌍백면평구리의 도학자 창수 정형규(1880~1957) 역시 매월
초하루에 자제들을 한자리에 모아 집안어른들에게 절하게 한뒤, 가훈을
낭독시켰다. 그는 또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쓰이는 재물을 매일 기록
해서 매월 그믐에 가장에게 보고하고 연말에는 이것을 모아 "정씨가사"를
엮도록 만들었다.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륜이 무너지고 가족간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가족해체
현상이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이런 이야기들은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것쯤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고구려나 신라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할아버지들이 실천했던 삶의 이야기다. 자신을 "위로는 천백세 조상의 결론
이요, 아래로는 만억대 자손의 발단"이라고 중하게 여겨 빈틈없이 다스렸던
그들은 "가정의 화목"도 그만큼 중하게 여겼다.

세상이 달라지고 풍속도 바뀌어 요즘 이런 일들을 실천에 옮길수 있는
가정은 없을 테지만 한번쯤 귀담아 들어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