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화와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국가경쟁력의 제고라는 명제
가 빈번히 거론된다.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방법은 우리국민 각계각층의
모든 활동부문에서 강구돼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학이 맡고 나서야할
부분이 매우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그
내용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근원적으로는 교육을 토대로한 모든 학문이론
과 기술발전에 관한 정보창출및 획득으로 압축될수 있으며, 이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이룩할수 있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한나라의
대학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녀야 그 나라가 대외적인 경쟁력을 가질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대학의 실정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우리의 대학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위기의식
을 느낄 정도로 우리 대학의 낙후성은 심각하며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
또한 복잡하고 뿌리깊다. 만성적인 투자부족과 영세성, 타율적 규제의
습성화로 인한 창의력의 침체등 외적인 요인은 물론이지만 유난히 치열한
입시 이외에는 이렇다할 경쟁을 모르는 학생사회와 안일한 교수사회, 부실한
교육과 연구, 폐쇄적인 소집단 이기주의등의 내적인 요인들도 그에 못지않게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학의 내부와 외부에서 개혁
과 자기혁신을 제안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음은 당연하고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개혁할 것은 산적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국가경쟁력
제고와 가장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것 하나를 골라 말해
보려 한다. 그것은 고등교육기관의 기능적 분업에 관한 것이다. 한나라의
고등교육기관들은 그것이 성취하려는 목표와 특성에 따라 기능이 상이한
조직과 체제로 분화돼야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나라
의 대학은 그런 구분이 없기 때문에 많은 무의미한 상호모방을 되풀이 하고
있으며 그결과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은 그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급인력을 양성해 내야 한다. 그런데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고급인력이 한가지 유형일수 없다. 그것을 대체로
전문기술인력, 고등전문인력, 정예연구인력등으로 구분한다면 고등교육기관
도 그 세가지 유형에 적합한 체제를 갖춰야 할것이다. 여기서 대학 체제상의
차이점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같은 기능적 분업에 의한 체제상의 차이는
이를 자세히 검토하면 대학원 설치의 필요성 여부로 설명될수 있다. 가령
전문기술인력 양성기관에는 대학원이 있을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고등전문
인력의 배출기관에는 극히 제한적인 범위의 대학원 교육이 있을수 있지만
그런 기관은 고등교양교육이 본령이므로 학부교육에 치중하고 본격적인
대학원 교육을 원하는 졸업생은 다음단계 유형의 대학으로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인 정예연구인력의 양성을 담당하는
극소수의 대학은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 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예를보면 대체로 이런 기능적 분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대학마다 무차별적으로 대학원의 병설이
선호되고 있다. 대학원을 갖는다는 것이 학교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이해되거나, 또 각별한 추가적 시설이나 교수요원의 증원없이 학생
을 뽑을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의 수입을 늘릴수 있는 방편이 될수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인지 대학원은 거의 모든 대학에 병설되어 있다. 현재 우리는
1백57개의 4년제 대학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11개교의 교육대학과 12개교
의 산업대학을 제외하면 1백34개교가 되는데 그중 1백2개교에 대학원이
병설되어 있다. (이 숫자는 소위 일반 대학원만을 말하는 것이고 특수대학원
또는 전문대학원은 제외한 숫자이다)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에 주로 설치돼야
할 대학원이 이처럼 난립되었을때 생기는 역기능 내지 해독은 실로 막대
하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이 처한 위기상황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선 그같은 난립은 국가사회 전체의 자원을 낭비하여서 마땅히 생겨나야
할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의 출현을 방해한다. 우리나라에는 엄밀한 의미의
연구중심대학이 아직 없다. 정예연구와 연구인력 배출을 담당해야 할 연구
대학은 우선 그 규모가 교육중심대학 보다도 월등히 커야하고 시설의 질이
고급화 첨단화되어야 한다. 자원의 분산은 이런 연구대학의 출현을 가로
막는 것이다. 그런데 첨단 기초연구와 기술연구는 바로 이런 연구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연구대학의 부재는 결국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이 된다.

대학원의 난립은 또다른 경로로 고등교육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그런
대로 앞서가는 선발대학의 대학원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 바로 이것
이다. 연구가 앞서는 대학원은 당연히 전국 대학의 교수요원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대학이 자체 대학원을 갖게
되면 그것은 필경 학위소지자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에는 철저한 동계번식적인 교수충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교육능력을
저하시킴은 물론이고 충실한 연구대학의 대학원도 부실화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이 소수여야하는 또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 서둘러야할 개혁중에는 대학원의 존재양식
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 즉 체제의 리엔지니어링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겠다. 이것은 대학의 분업화를 서둘러야한다는 말이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연구중심대학은 부득불 소수라야한다. 수준 높은 교육을 하는 학교의 수가
많을수록 좋지 않느냐는 반론은 말장난이 아니면 억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