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그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라고 할수 있다. 본관까지 따져 3천
3백40개에 달하는 각성들이 꾸준히 펴내는 책이란 점에서 그렇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경제적인 여유를 반영, 족보 발간이 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전시 동구 중동47의4 회상사는 대표적인 족보전문 인쇄.출판회사다.
54년 설립이래 매년 3만~5만권의 족보를 찍어낸 이 회사는 1천2백개 문중의
족보 3만5천권을 소장한 국내 유일의 족보도서관도 갖고있다.

만40년동안 족보인쇄의 외길을 걸어온 이 회사 박홍구대표(73)를 찾아가
만나봤다.

-창업이래 줄곧 족보인쇄를 전문으로 해오셨는데 왜 하필이면 이 분야를
택하셨습니까.

<>박대표=내가 이 사업을 시작한 54년은 6.25가 갖끝난 시점이었습니다.
일제말의 어려운 여건에서 족보를 펴내지못한 문중,6.25로 족보를 소실한
사람이 많아 우선 족보 인쇄 수요가 많았어요. 또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
핏줄을 찾아야겠다는 사회적인 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던 시기였습니다. 최근
들어 족보인쇄수요가 늘고있는 것도 대부분의 문중이 50년대 후반에 족보를
발간, 이제 다시 수보해야될 때가 된데도 원인이 있지요.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 인쇄한 족보는 어느 가문 것이었습니까.

<>박대표=경주이씨 국당공파보였습니다. 족보인쇄는 다른 인쇄와 다른 점
이 많습니다. 우선 선대의 이름(휘)에 희귀한 한자(벽자)가 많기 때문에
아무 인쇄소에서나 찍어내기 힘든게 족보입니다. 그래서 한번 찍게되면
계속 각 문중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김해김씨 전주이씨처럼 자손이 많은 가문은 족보를 하게되면 엄청난
부수를 찍어야할 것 같습니다만..

<>박대표=족보는 시조로부터 시작해 본관이 같은 성 전원을 수록하는
대동보,중시조가 같은 자손만 수록하는 파보,수록범위가 더욱 좁은 가첩
으로 구분할수 있는데 김해김씨나 전주이씨같은 대성들은 대동보는 내기
힘들지요.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다 싣는다는게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성들은 주로 중시조이후의 파보를 내지요. 안동권씨 문화유씨 여흥민씨
같은 가문의 경우에도 대동보를 찍게되면 부수가 2만,3만부에 이르게
됩니다. 파보의 경우에도 1만부 가까운 부수를 찌어가는 문중도 없지
않습니다.

-족보를 전근대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없지않은 것 같습니다만..

<>박대표=잘못이지요. 국제화다 세계화다 하지만,그것도 출발은 자기
뿌리를 알고나야 제대로 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
(북쪽 오랑캐땅 말은 북풍에 의지하고 남쪽 월나라새는 남쪽가지에 둥지를
튼다)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사람은 뿌리,곧 조상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뿌리를 아는 것이 미래를 개척하는 길이라고 볼때 족보는 결코
전근대적인 것이 아니지요. 씨족이 합쳐 민족이 됐다고 볼때 씨족사의 기록
인 족보는 민족사의 귀중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족보는 그 속성상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발행해야할 것 같은데
대체로 그 주기가 얼마나 됩니까.

<>박대표=족보는 기본적으로 같은 성을 가진 자손들의 생 졸 묘 배 관직을
기록하는 책 아닙니까. 따라서 일정 기간뒤에는 변동된 상황을 수록하기
위해 다시 펴내야 합니다. 보통 30년정도 주기였는데 최근들어서는 20년
정도로 짧아지고 있습니다. 문중에 따라서는 10년만에 파보를 다시 내는
경우도 많지요.

-시대가 바뀌면서 족보의 외형과 편집형식도 상당히 달라졌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박대표=많이 달라졌지요. 한지가 양장으로 바뀐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고 조상의 묘소 제실등의 천역색사진도 싣게됐지요. 또 옛날에는 딸
이름은 싣지 않고 사위만 올렸는데,최근들어서는 미혼이더라도 딸 이름을
싣고 결혼했으면 딸이름 옆에 사위이름을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생 사망한 해를 간지로 썼던 것도 서기 0000년으로 바뀌어 쓰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3품이상 군수이상의 관직만 기록했는데 지금은 교장 면장 서장
소위도 기록하는게 흔하지요. 또 한자로만 쓰던것도 지금은 한글로 서문을
쓰는등 많이 달라졌지요.

-우리나라에서 족보는 어느 가문에서 가장 먼저 펴냈습니까.

<>박대표=족보는 중국 송나라때의 문인 소식이 자기 가계를 밝히기위해
기록했던 소보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조 명종때 나온
문화유씨 가정보와 안동권씨 성화보가 가장 오래된것 이지요. 우리나라의
족보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관심들이 많습니다. 하버드대 동양학연구소가
우리 회상사에서 발간한 족보를 구입해간 적도 있고, 대영박물관에도 우리
나라 족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성이건 족보의 게재순서는 비슷하지요.

<>박대표=대체로 같지요. 맨 앞에 조상산소 제실 서원등 관련사진을 싣고
그다음에 서.간행사등을 통해 족보를 발간하게된 동기.필요성을 밝히는 것
이 보통입니다. 서에는 종전에 발간했던 족보의 서도 함께 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조이하 모든 자손을 계대에 맞춰 기록한 자손록은 말하자면 족보의
본문인 셈인데 이름(휘)아래 대체로 자.호.출생연월일 관직명 사망연월일
묘소위치및 좌향 석물유무 배위(부인)의 관향.부.출생연월일 사망연월일
묘소위치순으로 기재합니다.

최근들어 미혼여도 족보에 올리는등 여권신장이 족보에도 나타나고는
있지만 자녀의 기재순서는 선남후녀로 변함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가문의 족보를 발간하셨으니 보학에는 아주 조예가
깊으시겠습니다. 어느 가문에서 문과급제자를 몇명 냈고 벼슬은 어느
가문이 많이 했는지 훤하시겠습니다.

<>박대표=전주이씨 안동권씨 파평윤씨 남양홍씨 안동김씨 청주한씨등이
특히 문과급제자가 많은 가문이지요. 또 광산김씨 달성서씨 연안이씨는
3대연속 대제학을 배출했다는 자랑이 있고,은진송씨도문묘에 배향된 18현중
2명을 낸 가문이지요. 그러나 과거급제자가 많다는 것등을 자랑하는 것은
양반 상놈을 따지던 전시대적 시각이라고 봅니다. 족보는 조상자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조상과 혈통을 알기위해 만드는 것인 만큼 어느 가문이건
있었던 대로 기록하면 그것으로 좋다고 봅니다.

-족보를 만들다가 누가 장자냐는 문제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없지않은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만..

<>박대표=그런 경우가 적지 않지요. 서로 자기조상이 장자라고 주장,서차
문제로 논란을 벌이는 성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장자를 중하게여기는 전통
적인 가족관 때문이기도 하고, 이조때 당쟁과 사화로 각성 모두가 부침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조상이 역적으로 몰려 폐가를 당했다가 2.3
대 지나 명예회복을 한 가문의 경우 거의 하나같이 서차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폐가상태로 자손들이 흩어진 시기의 기록이 분명치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어쨌든 성은 대동보를 펴내려다가 서차문제로 일부가 불참을 선언, 물의를
빚는 여성도 많아요. 또 어떤 가문은 그동안 나온 대동보에 기재된 큰집
작은 집의 순서가 왔다갔다 하기도 했어요.

-그런 경우 족보전문가로서 도움말을 주실 수 있었을것 같은데요.

<>박대표=이조때 발생한 사안을 따지는 것인 만큼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니
지요. 지난번 족보만들때 이런저런 사유로 이렇게 고증이 됐다는 것을
당신이 증언해 줄수 있지 않는냐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아무튼
나로서는 골치아픈 문제지요.

-다른 책도 아니고 족보를 인쇄해주시는 만큼 고객과의 관계도 특이한
점이 있을것 같습니다만..

<>박대표=인쇄가 끝나 족보를 "모셔가서" 봉안식을 하는 경우 나를 맨
윗자리에 앉혀주시는 가문들도 있지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자기 조상
들의 기록을 펴내줬다는 고마움의 뜻을 그렇게 표시하는건데, 참 기분이
좋습니다.

또 윤보선대통령 같은 분은 해평윤씨 대동보발간때 우리 회사를 찾아오신
적도 있고, 서울 오거든 꼭 들려달라고 말씀하시기도해 댁으로 찾아가
대접을 잘 받기도 했습니다.

(박대표는 같은 고영박씨인 박정희대통령이 지난75년 대동보발간때 써준
화친이란 휘호, 김대중씨가 지난92년 회상사를 방문해 써준 실사구시란
붓글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때고간에 족보는 시급히 발간해야할 성질의 것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경기를 탈것 같습니다만..

<>박대표=글쎄요.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경기영향을 거의 받지않는 것 같습니다. 불황이 심하다는 해나 호경기인
해나 주문물량에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족보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십니까.

<>박대표=이조의 시대사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학계에서 족보에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갈수록 씨족 관념은 엷어지겠지만 그래도
혈통을 분명히 하는것은 그나름대로 의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족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