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또래들의 모임이 산초회의 뿌리가 됐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살던
우리들은 같은 교회를 다니며 우의를 다졌으며 음악을 사랑한다는 정서를
공유하고있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지금도 음악사랑은 이어져 모임
마다 클래식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 서울대학교에 진학,
동문으로서 연을 이어갔다.

우리들은 6.25 4.19 5.16등 격동기를 함께 고민하고 분개했기에 더더욱
친밀해졌다. 이는 수많은 토론을 거치며 동네친구가 인생을 조율하며 의논
하는 어엿한 반려자로 바뀌게 된데 따른 것이다. 우리는 40년이 넘게 우정을
나누었기에 그만큼 "흔적"도 많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성가대를 쫓아다니며 여학생들을 흠모하던일,대학에
진학해 미팅때마다 오페라아리아를 불러제껴 뭇 여학생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었던 일,무전여행을 다니던일등. 과거를 회상하면 그립기만하다.

특히 대학3학년때 강원도 북평해수욕장에 여행을 가 밤을 새우며 세상의
술이란 술은 모두 비우겠다고 어울렸던 기억이 새롭다. 4학년때는 4.19가
터져 데모군중의 섞여 독재타도를 외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멤머중에
김치호군이 있었는데 그는 데모중 동생과 함께 부상을 당해 동생을 살리고
자신은 유명을 달리해 일화를 남기기도했다.

이렇게 우리산초회는 "과거"를 많이 갖고있다. 그만큼 우정의 깊이도
남다를 수밖에 없지않은가.

산초회라는 이름은 노재승군의 별병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는 충직한 부하 "산초"라고했던 노재승군. 우리는 그의 별명을
따라 항상 모든 일에 충직하게 살자는 뜻으로 산초회라고 모임이름을
정했던 것.

우리들은 일년에 2~3회 부부동반으로 모인다. 이때는 각자 종사하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한다. 서로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다보니 세상살아가는 얘기를 다각도로 "분석"할수있다는 판단에서
이를 구체화하고있는것이 주제발표이다. 약식토론회도 이어진다.

정기모임이외에도 동네친구였던 만큼 스스럼없이 훼가 동하면 만나기도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가지 우리모임이 씨앗이돼 산초회이상의 응집력을
갖은 모임이 생겼다. 부인들의 모임이다. 이모임은 매달 만나 자녀교육과
남편건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있다.

산초회의 멤버는 다양하다. 조흥은행의 허종욱상무 김종찬백광소재사장
최재득내과의사 이진설전청와대경제수석 이철호부국증권사장 노재승변호사
이호철한일은행연수부교수 이상호한일개발전무와 진성상역을 경영하고있는
필자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