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다.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중소기업수는 대략 80만여개. 이들 중소기업은 대만 총생산량의
약70%를,전체 수출액의 약90%를 차지하고있다. 중소기업이야말로 대만 경제
의 국제경쟁력 을 향상시킨 제1의 공헌자인 셈이다.

대만중소기업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 업체간 협력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다. 이들 중소기업은 상호경쟁도 치열하다. 수십개,경우에
따라서는 수백개에 달하는 동종업체와의 피나는 생존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분업체계와 업체간 제휴,그리고 경쟁"대만 중소기업의 사업형태를
가장 적절하게 요약한 말이다.

대만 중소기업간의 협력관계는 "책략연맹"으로 표현된다. 우리말로는
"전략적 제휴"이다. 기업 서로간의 필요에 따라 부품공급 유통 판매등의
제휴관계를 맺는다는게 이말의 뜻이다.

이들의 제휴에는 외국기업도 끼여든다. 대만 중소기업의 국제화
모델이기도 하다.

주식회사 익훈은 타이베이에 있는 가죽제품 생산업체. 이 회사가
만들고있는 "디모나"상표의 핸드백은 책략연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디모나 핸드백의 디자인은 이탈리아로부터 수입됐다. 생산은 중국에 있는
익훈 현지공장이 담당한다. 일단 생산된 핸드백은 홍콩의 판매 대행사를
통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등으로 수출되고 일부는 대만 내수시장으로
공급된다. 핸드백 하나에 대만 이탈리아 중국 홍콩등 4개국 회사가 관여한
셈이다.

타이베이 사무실에서 일하고있는 직원은 고작 10명. 익훈은 현재 "월간
약64만달러의 순익을 보고있다"고 이회사 마사장은 말한다. 책략연맹을
이용,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이익을 챙기는 셈이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오토바이 하나를 만드는 데도 부품별로
1백여개의 중소기업이 책략연맹을 통해 참여하는가 하면 "486컴퓨터"
생산에도 수백개의 중소기업이 관여한다.

책략연맹이 중소기업간의 협력형태를 나타낸다면 "윙성분공"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관계이다. 태양주위에 수성 금성등 여러 위성이 돌고
있듯 대기업 한개에 다수의 중소업체가 협력업체로 존재한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가오슝에 있는 자이언츠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자전거업체.

1천4백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있는 이 회사는 대만에서는 대기업이라
할수있다. 이 회사에 관계하고있는 윙성회사(중소기업)는 1백여 업체에
달한다. 이들 위성회사는 자이언츠사가 필요로하는 각종 부품을 공급한다.
위성회사들은 자이언츠로부터 기술을 제공받기도한다.

대만의 또다른 대기업인 에이서,대동등도 컴퓨터 가전제품등을 생산하기
위해 수십개씩의 위성회사를 거느리고있다.

위성분공시스템은 우리의 대기업-중소기업 관계형태인 하청업체 시스템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하청업체형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수직적 관계
라면 위성분공은 수평적 관계라 할수있다.

"대기업은 수많은 동종 부품중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부품을 선정,그
부품 생산업체에 제품공급을 의뢰하지요. 선정의 기준이 업체가 아닌 상품
인 것입니다. 윙성업체에 있어 대기업에 대한 부품공급은 사업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들은 수출등을 통해 또다른 독자 사업망을 가지고 있지요"
에이서의 채숭기아시아.태평양영업국 부국장은 윙성분공 체계상의 대기업-
중소기업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윙성분공에는 대기업의 횡포도,중소기업
의 생사를 건 로비도 있을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또다른 요소는 동종업체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동종업체보다 뛰어난
제품을 보다 싼가격에 생산키위해 경쟁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당연히
경쟁력있는 제품이 나올수 밖에 없다.

대만 자전거 부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는 2천2백페이지의 두툼한 책
한권이다. 이중 안장 만을 만드는 업체는 모두 25개 업체. 이들이
만들어내는 안장 종류만도 6백여가지이다. 세계 자전거 메이커들은
부품조달을 위해 대만으로 달려온다.

가격이 싸면서도 디자인이 다양해 원하는 품목을 쉽게 구할수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자전거 부품업체가 대만을 세계 자전거 생산
1위국가로 키운 것이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산업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유의 업종에서 더이상의 수익성을 기대할수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업종으로 변신한다.

지난86년 가전제품시장을 개방하자 대만 가전제품 메이커는 설땅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가전제품업체가 모두 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날렵하게 업종을 전환했다. 대만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였던 대동이 업종을
컴퓨터 변압기등으로 전환해 재기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대만 기업인들은 해외 정보수집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있다. 미국 일본
에서 개발중이거나 개발된 기술은 며칠이 안돼 대만인들의 정보망에 포착
된다. 화교는 이들의 제일가는 정보통이다. 대만기업인들은 수입 기술을
포장,보다 멋진 상품을 만들어 낸다. 미국이 개발하려던 그린컴퓨터를 가장
먼저 상품화한 것도 다름 아닌 대만의 대표적인 컴퓨터회사인 에이서이다.

대만 기업인들은 기술 공개에도 인색해하지 않는다. 일단 도입된
해외기술은 다른 업체로 빠르게 확산된다. 채부국장은 "기술을 보유한
우리회사 직원이 다른 회사로 옮기면 당장에야 타격을 입겠지만 장기적
으로 보면 우리에게도 이익"이라고 말한다.

국가 전체의 기술수준이 높아져야 산업기반이 튼튼해 질것이고 그래야만
자기회사도 함께 성장할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만 기업들은 공존의 지혜를 알고있다.

<한우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