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산전서 일권 시문집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동서남북 무소장 하핍귀천 무소간택 여중국지법 가야"(동서남북에
아무런 장애가 없게하고 원근과 귀천을 가리지 않게하여 중국의 법과
같게함이 마땅하다).

풀이하면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문구가 통새이라는 의항목에 나오는걸 보면 제도나 사람사이에 막힘이 없게
하자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다산은 특히 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옹졸하다고 지적한 터이니 통색은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자는데 목적을 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같은 다산의 "통새논"은 우리가 요즘 경제를 살리자며 떠들고 있는
규제완화나 국제화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규제완화를 어떻게
해야하고 국제화의 방법이 무엇이냐를 놓고 논의가 분분하지만 그 출발은
역시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통색이 시작돼야 하느냐는 점인데 그건 "경제3강"에서
비롯돼야 옳다. 여기서의 3강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등 이른바
경제대국을 가리키는게 아니다.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청와대경제수석을 이렇게 칭해 보는 것이다.
세사람은 우리경제정책의 최고 결정권자이거나 적어도 정책수립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수 있는 자리에 있으니 경제3강으로 불러 무방하지 않을까.

이들 3강부터 마음을 트고 통색을 해야한다는 것은 김영삼정부의
윗물맑기운동과도 같은 이치다. 3강이 통하지 않고 어떻게 아랫사람들이
통할수 있기를 바라고 나아가 민과 관이 경제전쟁에서 함께 승리하기를
기대할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그렇다.

더구나 지난연말 개각으로 지금의 3강은 그 어느때보다도 개성이 강하다.
이회창국무총리는 알려진 대로 원칙을 지키는데 흔들림이 없는 인물이다.
정재석부총리도 결코 뒤지지 않는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다. 소신껏
행동하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박재윤수석은 또 어떤가.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전진만을 아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렇게 개성이 뚜렷한 탓에 이총리는 법규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식으로
그의 "전공"을 살리기 십상이다. 어떤경우엔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의식한
나머지 불쑥불쑥 인기발언을 할수도 있다. 정부총리는 본인의 말처럼
이코노미스트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것도 같다. 박수석은 청와대
"소경제내각"을 만들면서 각종 구호성 이벤트를 창출해내는등 여전히
"스타일리스트적인 활약"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불행하게도 이런 가정은 벌써 현실로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총리의
"공무원봉급인상 지시설"이나 부총리의 "물가현실화 발언"등은 아무리 그
뜻을 높이 산다고 하더라도 어딘가 인기위주이고 돌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특히 물가현실화 논리는 6공시절 교수출신 건설부장관의 "아파트분양가
자율화" 주장만큼이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경제팀
에선 그냥 경제라고 해도 좋을 것을 "신"자돌림을 붙여 분칠을 계속하더니
이젠 "경제운용"이 아니라 "경제운영"으로 고쳐 쓰라고 경제부처에 지시
했다고 한다. 경제3강 모두 제각각 "강자"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세사람의 개성과 이력이 독특한 만큼 역으로 시너지효과를
낼수도 있다. 총리는 법률에 정통하기 때문에 법조문보다는 법정신으로
국정을 풀어갈수 있을게고 그결과 규제완화 같은데서도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 부총리는 그의 장기라고 할수있는 경제논리를 정책으로
각론화하고 실체화시켜 나갈수 있을 것이다. 경제수석도 천성이 열심인
사람인 만큼 그의 직급과 역할에 걸맞게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할수 있다.

이렇게만 되면 3강위의 대통령도 굳이 "경제대통령"을 자임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 김대통령은 아무리 경제를 강조해도 경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가 박혀있다. 그는 원래 직업정치인 출신인데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속성도 경제보단 정치쪽에 가깝다.

때문에 김대통령 스스로가 경제대통령이라고 해도 그말이 국민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는게 현실이라면 현실이다. "규제완화가 제대로 되는지
직접 점검하고 물가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말보다는 "경제는 당신들(3강)
이 알아서 하시오"라는 소리를 더 듣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경제3강이 통색만 한다면 대통령도 그런 발언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