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국제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제화의 개념이나 전략은 나오지
않고 용어만 요란하게 사방에서 난무하는듯하여 다소 황당한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연초 한 TV에서 국제화의 상징으로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을 모아
한국어말꼬리 잇기 대회프로를 방영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에게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연이어 물었다. "우리말 얼마나
배웠습니까" "우리노래 어디서 배웠습니까". 이 경우 우리쪽에서 "우리
말 운운"해버리면 상대방은 "당신네 말"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말"
을 배운것이 아니라 열린 국제감각으로 세계언어중의 하나인 "한국어"
를 배운것이다. 그런데 우리쪽에서 민족의식 혹은 자기중심 의식에서
"우리말"이라고 해 버리면 실상 거기에는 엄청난 국제화의식의 갭이
존재하는 것이다. 참고로 외국의 비슷한 프로에서는 "타이말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일본노래는 언제 배웠습니까"식이다.

지난 여름 한 TV의 일기해설이 생각난다. 잘생긴 해설아나운서가 제
주를 향하던 태풍이 일본쪽으로 향하자 한다는 말이 "일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런 유의 일기해설을 한국TV에서 수십번이나
들어왔다.
그런데 반대로 일본TV의 일기해설에서 "태풍이 조선반도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쪽에 피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하는 식이다. 이것은
마음씨가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니라 국제감각의 차이이다.

지금의 국제화를 구한말의 개항에 이은 제2의 개국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점에서는 구한말의 일본에의한 제1의 개국 그리고 해방
당시 미.소에의한 제2의 개국에 이어 냉전후 지금 내적자각에 의한
제3의 개국이라는 문맥으로 정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객관적
문맥이 그러하지 않는가.

제1의 개국당시의 개화사상가 유길준은 그의 명저"서유견문"에서
개화에 대응하는 인간유형을 여섯가지로 나눈바가 있다.

먼저 개화의 주인. 이것은 개화를 힘써 연구하고 앞장서 실천하는
인간유형이다. 개화의 손님. 이는 개화를 관념적으로 이야기하되
행동은 별개인 인간유형이다. 개화의 노예는, 개화의 물결에 질질
끌려가되 내심으로는 개화를 좋아하지 않는 인간유형이다. 다시
개화의 죄인이 있다.

이는 개화가 지나친 자로서 외국것은 다좋고 자기것은 다 나쁜것으로
보는 부류이다. 그 반대가 개화의 원수로 개화를 비난하는 보수적
부류이다. 끝으로 개화의 병신. 이는 개화의 허풍에취하여 외국말이나
지껄이고 외국물품이나 들고 다니며 뽐내는 부류들이다.

이러한 개화에 대응하는 인간유형론은 바로 오늘날 국제화에 대응하는
인간유형으로 옮겨 볼수 있다. 먼저 국제화의 주인,이는 국제화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고 앞장서 실천하는 인간유형이다. 국제화의 손님은 관념적
으로 국제화를 주장하면서 의식과 실천이 따라 가지 않는 유형들이다.
앞서 예를 든 TV진행사회자들,일부 일기해설자들도 혹 여기에 속할지
아니면 국제화의 미숙아 정도로 분류해야할지 모르겠다.

국제화의 노예는 누구일까. 배타적 국수주의적 경향을 보이다가 요즘
침묵으로 국제화의 물결 후미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할지 모른다.
국제화의 원수는 어떤 부류일까. 일부 국수주의자 그리고 정부규제속
에서 덕을 보는 일부 기득권층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또 생각나는게 있다. 외무부라면 국제화의 핵심부처일것이고 그중에서도
중요한것은 유엔담당부서가 아닐까. 그런데 한국외무부의 유엔담당과는
"국제연합1과" "국제연합2과"로 되어있다. 국제연합이란 무슨 뜻인가.
유엔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연합국"이다. 지금 중국도 동남아도 그렇게
번역해서 사용한다. 일본도 처음 한동안 그렇게 번역하다가 그만
"국제연합"이란 번역으로 바꾸어 버렸다. 제2차대전때 일본은 "연합국"과
싸워 패전했던것이고 그러한 전승국가들의 "연합국"이 그대로 유엔의
단체가되었던 것인데 일본을 패망시킨 "연합국"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국제연합"으로 이상하게 번역해서 사용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이것은 국제화의
죄인일까, 동신일까, 하다못해 "UN1과" "UN2과"정도로라도 바꾸어야
하지않을까.

국제화란, 국경없는(borderless)개방시대에 외국인과 함께 서로 경쟁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지혜와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화란 명분에서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경쟁력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경쟁이란 흰이빨을 들어내지 않는것이
오히려 경쟁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지금 각국은 이빨을 안으로 감추고
협력을,상호의존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국제적 분위기이다.

클린턴정권의 핵심 브레인인 버거스텐(Berger Stein)의 표현을 빌리면
경쟁적 상호의존(Competitive Interdependence)이다. 더구나 한국도
미.일.중.러의 한복판에서 조정과 협력의 역할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우리는 국제화란 해외문화 해외요소를 받아들여 우리문화
우리의 경제적요소와 창조적 결합을 하는 이화수정이라고 본다. 따라서
국제화의 진정한 주인은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의 신결합을 이룩하는 존재
혹은 문화적 산업적 이화수정의 주체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