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리를 파직한 데 이어 요시노부는 역시 강경파이며 주전론자인
마쓰다이라 가다모리와 마쓰다이라사다아키 형제를 에도에 머물지 말고
자기네 번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했다. 추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 형제는 요시노부가 쇼군이 된뒤로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를 한 측근
중의 측근이었는데,역시 냉정하게 밀어내 버렸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은
막부측의 주전론자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조정에서도 다
알고 있는데,종전과 다름없이 측근으로 데리고 있어서는 결코 공순의 길을
택했다고는 보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요시노부는 막부의 주요 직책을 맡고있는 중신들 가운데서 강경파
에 속하는 사람은 모조리 온건한 성향의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를 했다.
말하자면 대대적인 물갈이를 한 것이었다.

세이간인노미야가 덴쇼인과 상의를 하여 탄원서를 써서 시녀인
쓰치미가도후지코를 교토로 보내어 조정에 제출토록 한 것은 요시노부를
만난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세이간인노미야는 유신정부 앞으로 제출하는,
공식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탄원서를 보냈고, 덴쇼인은 별도로
사이고다카모리에게 사신을 적어 함께 보냈다. 그 사신은 아무도 모르게
사이고다카모리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그런 사실을 확인한 요시노부는 별도로 자기도 서찰을 적어
마쓰다이라요시나가를 비롯한 도쿠가와요시가쓰,야마노우치도요등 신정부의
온건파 앞으로 사신을 보냈다. 물론 공순의 길을 택하기로 했으니, 휴전이
성립되도록 노력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열흘 가량 뒤에 그 탄원서와 사신,그리고 요시노부의 서찰은 교토의 유신
정부와 당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세이간인노미야의 탄원서를 접수한 정부에서는 어전회의를 열어 그 문제를
논의하였다. 메이지천황은 고모인 세이간인노미야가 손수 쓴 탄원서를 읽어
보고 중신들에게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사이고는 일인지하에 안된다고 잘라 버렸다. 왕정복고를 이룩한 유신정부
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역적이 쇼군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조건으로
휴전을 하러 들다니, 뻔뻔스럽기 짝이었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죄과가
얼마나 큰 것인줄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주저없이 에도로 진격
하여 막부를 그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길만이 남았다고 열을
올렸다.

"요시노부에게는 셋푸쿠가 있을 따름입니다" 사이고는 유난히 큰 두눈을
부릅뜨며 거침없이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