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강은 양적인 측면이나 가격경쟁력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범용제품은 품질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러나 고부가
가치제품쪽으로 가면 상황은 다르다. 전체 철강재생산에서 차지하는
고급강의 비율이 26%(92년)로 일본의 35%에 비해 낮고 제조기술도
떨어진다. 과연 한국의 철강기술은 어디쯤 와있을까.

국내 철강기술수준을 가늠해볼 수있는 대표적 사례가 포항제철의
자동차용 유기피복강판 제조기술도입. 포철은 94년말까지 연산10만t
규모의 유기피복강판 생산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 상반기
1백44만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일본의 신일철로부터 이기술을
들여왔다.
부분적이긴하지만 세계랭킹2위의 철강기업으로서 한국의 철강산업을
리드하는 포철까지도 돈을 주고 기술을 사와야하는 형편이라는 얘기다.
그게 한국철강기술의 현주소다.

포항제철부설 산업과학기술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철강기술은
현재 미국 일본등 선진국에 비해 6년정도 뒤져있다. 40년의 격차를
보이던 60년대와 비교하면 그동안 엄청나게 따라잡은 셈이나 6년의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않는 고부가가치기술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수 없는 간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업및 공정기술이 선진국과 비교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수준에
올라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격차가 나는 것은 기술개발력이 크게
떨어진다는데 원인이 있다. 예컨대 조업기술지표중 하나인 60t전기로의
용해시간은 55분으로 일본의 60분보다 오히려 짧다. 1t의 철강을 생산
하는데 소요되는 에너지, 다시 말해서 에너지원단위도 5백29Kcal로
일본의 5백89Kcal보다 낮다.

그러나 제품개발력을 비교해볼수있는 고부가가치제품의 수준을 따져
보면 상황은 판이하다. 자동차용고장력강의 인장강도가 한국산은
평방미리미터당 80Kg으로 일본의 1백20Kg에 비해 크게 낮다. 냉연표면
처리강판의 보증연수도 일본이 10년인데 비해 우리는 7년에 불과하다.

포철이 신일철로부터 자동차용 유기피복강판제조기술을 사온 것도
이같은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다. 유기피복강판은 아연.니켈합금을
입힌 강판을 크로마트처리(크롬도금)한뒤 그위에 다시 유기피복수지를
덧씌운 3중표면처리강판.아연.니켈합금도금처리기술과 특수크로마트
처리기술,박막유기수지피막기술을 모두 확보해야만 제조가 가능한
고부가가치제품. 국내업체들의 기술은 아연.니켈의 합금도금기술의
경우 일본의 90%수준에 이르고있으나 크로마트처리기술과 박막유기수지
피막기술은 30%수준에 그치고있다.

미래의 철강제조기술인 용융환원제철법 스트립캐스팅법등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연구개발 착수시점이 늦어
반발짝정도 뒤져있다는게 철강업계종사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일본의 경우엔 "포스트(post)용융환원제철"로 불리는 "신세대 코크스로"
의 연구개발계획까지 세워놓고있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철강기술도 갈수록 수명이 짧아지고있다.
예컨대 대장간수준의 소형용광로가 2백여년간 수명을 기록한데 비해
이를 대신해서 나온 중형용광로는 60년,그후 등장한 대형용광로(현재의
고로)는 30년,다음세대로 예정돼있는 용융환원로는 10년이면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게 철강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따라서 이같은 급속한 기술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선진각국들이 민.관합동 또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연대하여 혁신기술및
신제품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있는 것도 기술수명이 갈수록 짧아져 여기서
낙오하면 영원히 낙오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은 자동차업체와
철강업체가 연대해 자동차용외장강판을 공동개발하고있고 특히 민.관합동
10년후를 대비하는 JRCM프로젝트를 마련,추진하고 있다.

올해 국내철강업체들의 R&D투자는 모두 1천7백21억원. 매출액대비
1.33%이다. 91년의 1.0%에서 조금씩 높아지긴했으나 일본은 이미 90년에
2.33%를 기록했다 앞으로는 설비확장못지않게 연구개발투자의 확대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