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바람이 물결위로 살랑거리면 갈잎은 사각사각 회답하는듯 차라리
다사롭다. 훌쩍 키 큰 풀숲사이에 포근히 감싸인채 반짝거리는 야광 찌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 익은 북두칠성이 나즈막하게 걸쳐 있는 그 윗쪽으로
별들의 소근거림이 찰랑거리는 보석바다 같다.

유성 하나가 흐른다.

문득 대구 복명국민학교 3학년시절이 떠오른다. 오전반을 마친 학동들은
얼른 집에 돌아가서는 보리밥에 물 말아 된장찌개로 점심 후딱하고는 친구네
집에 모인다. 숙제 공부하는등 마는등 몰려나가 동산못 둑방에 걸터 앉아
길다란 대나무에 명주실로 낚시를 매어 갈대줄기 잘라 찌를 꽂고 점심먹다
남긴 밥알을 끼워 던져 넣으면 머잖아 그 찌가 움직인다. 까딱까딱 톡톡
거리다 쏙 들어갈때 채어 올리면 올망졸망한 붕어들이 파닥거리며 낚였었다.

아직도 찌는 움찔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망우리 고개너머 교무리 건너 장지늪 동구능 가는 버스로 중간에 내려 근
십리를 들어가면 갈대풀에 둘러싸인채 길다랗게 누운 수면이 자못 소담
스럽게 여겨지는 곳이다.

대학시절의 우리는 경기도 물왕리에 자주 낚시를 하러갔다. 시외버스 막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까 옆에서 낚았던 봉어보다
더 큰놈을 낚을수 있을 것이라 내심 오기를 부리다가 결국 막차를 놓치고
터덜터덜 걸어나오기도 했다. 야트막한 산중턱 마루에 퍼져나가는 저녁밥
짓는 뽀얀 연기가 왠지 나를 애잔스럽게 한 기억은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그때의 친구들은 김기현(하나은행 인천지점장) 이상경(세무사) 신병길
(오버시즈 트레이딩 부사장) 홍태원(대한무역진흥공사 마닐라지점장)
김영철(동양투자금융 법인영업부장) 이윤명(한부인터내셔날 대표) 등이다.

낚시란 옛 시화에서처럼 한적한 시공을 호젓이 즐기는 멋이라야 한다고
느껴 이제 여럿이 무리지어 낚시터를 찾는 일은 주저하게 되었다. 동호는
여전한데 동락은 멀어져 가는것 같다. 요즈음의 웬만한 낚시터는 소란
스럽고 돈때 묻어 볼썽 사나운 일도 많은데다 쓰레기 마구 버려 엉망이고
각종 폐수에 찌들어 황핍해지는 산수가 안쓰럽다.

며칠전 잠실쪽에 볼 일이 있어 저녁 느즈막이 여의도에 있는 회사를 나와
올림픽대로로 차를 몰았다. 각오야 했지만 지체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덜 세련되어서일까. 덩치 큰 화물차의 저돌적인 밀어
부치기, 대형버스의 빵빵 경적음과 번쩍거리는 하이빔, 무례하여 차라리
얄망스러운 레이스카(?)의 끼어들고 빼어나기.

하, 그래. 우리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어하는 "빨리빨리족"
이었나보다. 차라리 고개를 돌려 한강쪽을 본다. 아!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각자 해야할 자기 몫을 다하고 서로 남에게 조금만 베푸는
태공망의 여유를 가지면,그래 저기 남산의 서울타워 낚시찌가 황홀한 빛을
발하며 주욱 치솟아 오를 것이다. 대한민국은 21세기를 낚아올릴 것이다.
그것이 곧 진정한 동호동락이 아닉가! 조금만 더하자. 조금만 기다리자.
그래, 그러고 보니 바로 여기가 명수대자리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