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장치의 범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현대를
도청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 상황에 이르른 것이다. 대형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하여 국민의 사생활을 낱낱이 통제하는 사회를 묘사한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실감케 하는 지경이 된 것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이 어떤 장소
에서 나누는 대화라도 도청할수 있는 기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으니 말이다.

도청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에서의 도청은
거의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청에 관한한 옛 소련의 KGB만큼 악명을 떨친 사례를 찾아보긴 힘들다.

1952년 모스크바시장이 당시 소련주재 미국대사에게 선물한 바다표범
박제속에서 레이저 도청장치가 발견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이 박제는 대사
의 책상위에 여러해 동안 놓여 있었으니 그 방에서 한 대화는 낱낱이 KGB
에 청취되었음은 물론이다.

87년에는 모스크바에 신축중인 미국대사관 건물 내부 곳곳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어 공사를 중단한 사태에 이르렀다. 벽돌 마루장 콘크리트기둥 철강
빔등 모든 건축자재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었으니 놀라운 일일수밖에 없었다.

도청은 국가간 첩보전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는 산업첩보전에 이용되기도
하고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침투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제헌 당시부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하위법이
없어 유명무실한 조항이 되어 왔다. 지난 89년 국정감사에서 안기부의
전화도청문제가 표면화된 뒤 오랜 논란을 빚은 끝에 도청금지법이 마무리될
단계에 와 있다. 국회가 영장없는 도청을 금지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이다.

그동안 권위주의적 정권들에 의해 침해되어온 기본권이 다시 지켜질 법이
마련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성패는 그 법을 운영하는
당국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도덕적 수준과 양식이 그 법의 이행과 준수
를 떠받쳐 주지 않는한 실효성을 거둘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첨단기기에
의한 도청은 그 흔적을 추적할수도 없고 증거를 찾아낼수도 없는 것이 특성
이기 때문이다. 법률의 존재가 만능이 아닌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