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국영기업민영화는 20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과 쌍벽을 이루는 개혁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정치와 경제가 엉클어질대로 엉클어져 있는 이탈리아는 부패고리의
단절이라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도 민영화가 강력히 요구되는 색다른
민영화의 당위성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민영화는 오는 12월6일로 예정된 국내6위 은행인 크레디토
이탈리아노의 정부보유주식매각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정부는 지난 19일부터 국내외의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전미스아메리카를 모델로 한 민영화광고를 시작했다.

2조리라(약 12억달러)로 기대되는 주식매각수입을 위해 1백억리라
(6백만달러)에 달하는 광고비지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이 은행의
민영화성공여부가 다른 국영기업들의 매각에도 중대한 방향타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지울리아노 아마토 전총리시절인 지난 91년에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19개 국영기업의 매각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관련입법의 지연등 정치권의 저항에 부딪쳐 아마토총리의 야심찬
민영화계획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에만 11조리라가량의
민영화수입이 계획됐었으나 실제로 집행된 것은 4%에도 못미치는
4천3백70억리라어치에 그쳤다.

정치권이 민영화에 반대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돈줄인 국영기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무솔리니정권에 의해 30년대초부터 추진된 국유화정책은
2차대전후에는 사회당과 기민당을 주축으로 한 장기연정에 의해 70년대말,
핵심적인 부문에서는 80년대까지 정권유지차원에서 지속됐다.

이 기간동안 집권정당들은 국영기업의 핵심직위에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참모들을 앉혀 두고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금맥을 구축했다.
이탈리아사람들이 하는 말로 국영기업은 "집권정당들의 봉토"였던 것이다.
민영화가 될 경우 이들 기업들에 들어가 있는 정당관련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야 하고 따라서 정당들의 안정적인 돈줄은 끊기게 된다.

집권정당과 국영기업들의 이같은 밀월관계는 작년초부터 시작된 부패와의
전쟁으로 산산히 부숴졌다. 전직총리들을 비롯한 집권당지도자들과
국회의원의 20%가 검은돈과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고 이들에게 돈을 공급해
온 가브리엘리 카그리알리 ENI(에너지그룹)회장등 3개 국영기업회장들이
쇠고랑을 찼다. 카그리알리회장은 밀라노교도소에서 지난 8월 자살했다.

부패와의 전쟁의 전과인 국영기업의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상에 분노한 이탈리아국민들의 민영화에 대한 갈망 등
정치.사회적인 여건이 호전됨에 따라 지난4월말 총리에 취임한 카를로
아제글리오 참피 전이탈리아중앙은행총재는 7월초 국영기업매각을 다시
착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올해에만 1백50조리라를 넘어설 것이
확실한 재정적자의 부담을 덜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이탈리아정부는 향후 5년간 총6백억달러규모의
국영기업을 처분할 예정이다. 크레디토 이탈리아노,이스티투토모빌리아
레이탈리아나(IMI),방카코메르시알이탈리아나(BCI)등 비교적 처분이
간단한 은행,보험회사들은 내년까지 정부지분을 일반인들에
매각하고 에너지그룹인 ENI나 통신업체인 STET등 비교적 덩치가 크고
사업영역이 광범위한 업체는 분할등의 구조조정을 거쳐 민영화할 계획이다.

현재의 참피총리정부는 재무부관리인 마리오 드라기(46)를 핵심으로 한
민영화전담반을 정부내에 두고 이른바 개혁파들로 구성된 국영기업수장들이
이들을 지원토록하고 있다. 국내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입김을 피하기
위해 민영화팀은 모건,골드만삭스와 같은 외국의 컨설팅회사들로부터
자문을 구하고 있다.

ENI의 프랑코 베르나베 회장은 경영진을 대폭 감축하는 외에 1년사이
27개의 자회사를 매각,5억달러의 수입을 거뒀다. 연말까지 매출12억
달러규모의 터빈엔진회사인 누오보 피그논과 북미및 남아프리카의
석탄탄광을 팔아 15억달러의 수입을 더 추가할 계획이다.
베르나베회장은 ENI의 남은 석유.가스 정유및 에너지판매망만으로 별도의
회사를 설립,빠르면 18개월내 민영화시킬 생각이다. 이 새회사가 팔린다면
1백9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민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문제는 민영화추진 방식이다. 이탈리아정부는 개별투자자에 대해
매각되는 국영기업주식을 3%이상 매입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부 민간기업들에 의해 경영권장악시도가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레디토 이탈리아노의 민영화에 대비,밀라노소재 민간은행인
메디오방카는 피아트,프랑스의 알카텔등과 이탈리아식 핵심주주그룹인
주주협정을 맺고 정부에 대해 공모이전의 사전주식할당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정부는 주식소유권의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정부보유주식을 이탈리아증시가 제대로 소화낼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그러나 증시전문가들은 낙관적이다. 1천8백만세대의
이탈리아국민들의 높은 저축률, 재무부채권의 수익률과 시장금리하락세
등으로 주식시장의 자금동원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반국민들의 민영화에 대한 뜨거운 성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베르나베 ENI회장은 민영화가 완성되면 "이탈리아경제는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정부보호적인 경제체제가 아니라 미국 영국과 같은
완전시장경제의 모습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를 표현했다.

<이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