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이라는 촉박한 시간에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작성하려니 외국의
계획이나 후일에 듣고 알게된 민주당시대에 작성된 3개년계획등 참고자료를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었다. 우선 국민소득계정의 60년 국민총생산(GNP)
수치를 연간 성장률에 맞추어 5.5%씩 증가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1차산업에 농림업 수산업,제2차산업에 광업 제조업 건설업,제3차산업에
전기 운수및 보관(창고업) 통신 주택 일반행정및 국방 기타서비스업등을
포함시켜 산업별성장률을 따로 정해야 했는데 그것들의 합계를 전체
성장률인 5.5%에 맞추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공업화를
하려면 콜린 클라크의 법칙에 따라 제조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고 농업은 성장률을 낮추어야 하는데 얼마나 낮추느냐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콜린 클라크의 법칙이 잘사는 선진국의 발전된 경제모형이기
때문에 미국과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면 제조업의 대GNP비중이 30%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을 같이하며 나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안상국행원등 계원모두가
콜린 클라크법칙의 신봉자였다.

이 법칙은 "경제가 발전하면 제2차산업의 비중은 높아지다가 낮아지고
제1차산업의 비중은 계속 떨어지며 제3차산업의 비중은 계속높아진다"는
것이었다.

클라크는 그렇게 되는 이유로 "경제가 발전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이렇게
늘어난 소득은 공산품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져 제조업 생산증가를
가져온다. 반면 농산품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3차산업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여행을 많이 하기때문에 그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도 1800년께에는 농업이 60%,제조업이 10%,제3차산업이 30%였던것이
지금은 농업이 3%,제조업 30%,제3차산업 67%로 클라크의 법칙대로 됐다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나는 계원들과 의논해서 당시 12.7%의 제조업비중을 연간1%씩 증가시켜
5년후에는 18%가 되도록 클라크의 법칙대로 작업지시를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클라크 법칙 그 자체는 후진국경제발전을 위해
취해야할 법칙이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선진국경제학자들은 그 법칙이
"역사적 통계를 추적"해서 만든 "사후적 법칙"이고 제조업의 비중증가는
결과에 불과하며 통계에서 나타난 제조업의 비중증가가 경제발전을
가져오는 원인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공박했다. 그래서 이같은 선진국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후진국의 공업발전을 가로막아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이
됐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후 내가 영국에서 펴낸 "성장과 발전"(Growth and Development)을 통해
콜린 클라크의 법칙은 "경제발전 법칙"이라고 반격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제조업에서 TV 시계 냉장고등 공산품생산을 증가시킴으로써 제2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도록 하면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에 콜린 클라크의 법칙이 경제발전 모형을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경제도 바로 이렇게 해서 발전한 것이고 제조업
의 비중은 현재 30%를 넘고있다.

콜린 클라크는 자기법칙에 관한 설명에서 "경제가 발전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증가한 소득이 공산품에 대한 수요증대이기 때문에 제2차산업
비중이 높아진다"는등 수요측면만 강조한 것이 결정적 잘못이 되어 공박을
받게된 것이다.

만일 클라크가 "세이의 법칙"인 "공급은 그 자체수요를 창조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는 것을 감안했다면 경제발전법칙으로 인정
받았을지도 모른다.

TV 시계 냉장고 선풍기 라디오 전축 자동차의 생산을 늘리면 고용증가로
노임소득과 자본소득등이 증가,전체국민소득을 향상시킴으로써 공산품에
대한 수요증가를 가져온다고 설명했어야 옳았다. 후진국경제는 공급부족이
문제인데 수요를 강조한 케인즈이론 역시 후진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공급확대,즉 공산품생산증대를 통해 제조업비중을 증가시키는
5개년계획작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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