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어느 외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에서 미국정부 처럼 경제를 모르는 정부는 없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경제학자들이 정부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의 경제를
배웠고 그것이 현실경제와 괴리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에는 그토록 많은 경제학자들이 들어와있지 않으므로
일단은 안심해도 좋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 많다면
이것은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니다. 개혁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임에 틀림
없지만 그것도 현실과 유리되면 공중개혁이 될 우려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의 현실은 세계속에 있다. 우리 시장에서는 이미 세계의
상품들이 넘실대고 있으며 세계시장에서도 한국상품들이 나가있되 고군분투
하고 있다. 경제는 어느새 무국경이 되었는데 정책이 국경에 갇혀 있다면
우리 경제를 국제화시대의 이방인이 되게할 수 밖엔 없다.

요즘 세계경제지도는 지구의 생성기에 육지와 해양이 이합집산한 것처럼
새로운 구도를 그리고 있다. EC통합시장의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이미
발효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17일 미하원에서의 표결될 전망이다.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등에서도 경제블록화가 추진되고 있다.

아시아에도 이미 지역주의형태의 ASEAN이 있고 그보다 범위가 넓으면서도
교섭의 장은 아니었던 APEC가 이제 경제공동체의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의 경제활동공간이 새롭게 편성되고 있는 것이다.

17,18일에는 미국의 시애틀에서 APEC각료회의가 열린다. 19,20일에는
회원국들의 비공식 정상회담이 열린다. 내치에 여념이 없던 김영삼대통령이
이 회담에 참여하여 응분의 역할을 하게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내지도만 잘 그리면 모두가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다는
내국적 시각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 현실은 내국적 시각의 정책
선택에는 여지가 적고 새로운 세계 지도에의 적응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므로 김대통령의 이번 미국행은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와 한국의 경제질서를 접목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세계경제는 당분간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자유무역주의의 이상과 성채로서
경제패권을 다투려는 지역블록화의 현실론 사이에서 오락가락 할 것이다.
범위의 문제일뿐 이 두가지 조류는 다같이 국경의 초월이다. 드러커가
말하는 세계 경제의 현실이다.

세계최대의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NAFTA로서도 성이 안차 APEC의
공동체화까지 주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이처럼 치열한 전국시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경제는 지금껏
내국적 정치논리의 그늘에서 허덕이고 있다. 세계에서 10위권안에 드는
미.일.유럽의 거대기업군들끼리도 시장을 제패하기 위해 결합하고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기업들에는 오히려 경제력집중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경쟁국보다 배가 넘는 금리를 지불하고 있는데도 그
돈을 쓰는 것이 무슨 특혜인양 여신관리를 받고 있다. 선진국에서 조차
들어와서 공장을 지어달라고 야단인데 막상 이땅에선 거미줄같은 행정규제
로 국내외 기업의 창업을 어렵게 한다.

업종전문화정책만 해도 그 뜻은 수긍되고 당연히 그 방향으로 유도되어야
하지만 실질적인 강제성이 작용하면 경쟁력강화정책에 어긋난다. 럭키가
치약만 하고 전자를 안했다면,삼성이 설탕과 모직만 하고 전자와 반도체를
안했다면,현대가 건설만하고 조선과 자동차를 안했다면 우리경제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전반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3.4분기
에 6%선의 경제성장을 추정하고 있는 것도 진작부터의 다각화가 구원병
역할을 한 것이다.

경제에서 국경이 사라진다는 것은 바로 무한경쟁을 뜻한다. 또한
국내에서의 경쟁제한이 아무런 뜻도 없음을 말한다. 이것은 경쟁만이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는 길이라는 시장중심의 정책을 요구한다. 요즘
가전3사가 "카오스""로스비 캡""공기방울"등의 새방식으로 세탁기전쟁을
벌이고 있는 끝에 세계일유세탁기를 탄생시킨다고 기대해야 한다.

현실이 이와 같은데도 우리의 정책중엔 경쟁제한적 요소가 많아 새로운
세계경제지도에서 우리의 활동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번 주일은 김대통령의 방미와 APEC각료회의,NAFTA문제등으로 우리의
시야가 세계로 트이는 주간이다. 이런 계제가 각종 정책이나 국민적
행동양식이 국제적 기준에 맞춰,세계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입지확보를 향한 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