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9년 10월26일 일어난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은 유신체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비판과 부마항쟁, 그리고 박대통령의 사생활문란이 그 직
접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박대통령에게 권총을 쏘기직전 박대통령과
차지철청와대경호실장이 김부장에게 압력을 가한 말은 "김영삼이를 구속
하랬더니 이중처벌이 된다해서 안했다가 부마사태가 터졌다"는 내용이었
음이 확인됐다.
김재규는 비공개 법정진술에서 "각하말씀이,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
되면 자신이 직접 발포명령을 하겠다는 것이었다"며 "결국 각하가 계시는
한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고 유신체제가 계속되며 유신체제가 계속되
는한 막대한 희생자가 난다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8일 2회공판의 비공개진술에서 부마항쟁과 관련, "좌경학생들
이 선동한 것이라고 해서 부산에 직접 가보았더니 시위연행자 1백60여명중
학생은 1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일반시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데모하는 사람들도 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주먹밥을 먹여주
고 사이다 콜라를 갖다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집에 숨겨주고 하는 것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사태였다"며 "이에대해 차경호실장같은 사람은 캄보디
아에서는 3백만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가 1,2백만 희생시키는 것쯤이야
뭐 문제냐"고 해 소름이 끼쳤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사실은 동아일보의 기획시리즈 `군-어제와 오늘''취재진이 문민정
부이후 처음맞는 10.26사건 14주년을 즈음해 김재규등 8명에 대한 당시 군
사재판의 녹음테프전량을 단독입수, 보도함으로써 밝혀졌다.
김재규는 비공개공판에서 "미국도 이 체제를 좋지않게 생각하니 한번 완
화해보는게 어떠냐고 각하께 말씀드렸더니 `미국애들 데려가려면 다 데려가
라고 하라''며 강경하게 나왔다"고 말하고 "미국이 이 나라에서 독재가 사라
질때까지 한시적으로 우리를 버리면 6.25직전의 에치슨라인 선포때와 같이
다시 불행을 겪어야 한다"고 진술했다.
또 중정의전과장 박선호는 궁정동의 중정부속 비밀연회장(속칭 안가)에서
외부의 요청이나 연예인단체들로부터 소개받은 여자들이 참석한 주연행사가
한달평균 10회정도 열렸다고 증언했다. 그는 법정에서 "심적 갈등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일을 못하겠다고 김부장에 사의를 표했었다"고 밝혔으며 변호인
접견에서는 "그 긍정동행사에 참석한 내로라는 연예계의 미모여인들을 헤아
려보면 줄잡아 1백수십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당시 10.26사건과 김재규군사재판은 비상계엄령 아래 취해진 언론사전검
열로 인해 제대로 취재 보도되지 못했으며 재판자체도 국가기밀누설을 이유
로 중요한 부분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김재규는 군사재판 전과정을 통해 그날 박대통령에 대한 총격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결심한 `유신타도 민주회복''을 위한 거사였다고 일
관되게 주장했으며 비공개진술에서 "차지철은 덤으로 보낸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