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모국을 떠나 살다 최근 6년만에 귀국,일주일을 머물고 되돌아 온
길입니다.

서울거리를 활보하는 미끈하고 훤칠한 용모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제마음은 훈훈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뉴욕 거리의 젊은이들 못지않게
멋을 부리고 발랄한데도 청순함을 잃지않고 있는 자태는 참으로
고왔습니다.

제식구들은 요즘도 구부정한 다리를 쑥스러워하고 있답니다. 뉴욕거리를
누비는 서양의 여인들은 서울사람들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사건"
이었다고나 할까요.

새벽녘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70이 넘은 할머니가 "살만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도 제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에는 길모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더군요.
가락동의 한 아파트를 찾는데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서울이 얼마나 빨리
변하면 그럴까 싶어 그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꼽으라면 역시 식당과 자동차가 되겠지요. 먹거리가 그렇게
풍족하고 다양하니 저절로 배가 부른듯한데 길을 가득 메운 자동차를
어찌해야할지 참 난감하실 것입니다. 가끔 버스나 지하철 자전거를 타
보시는건 어떨까요.

뉴욕교포들은 제가 길을 떠날때 한결같은 당부를 했었습니다. 한국에
언제쯤 들어가면 상담을 벌일수 있을까 단단히 살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3년 가까운 미국의 불경기속에서 그나마 모국과 사업거리를 찾아왔었는데
사정한파 고통분담에다 금융실명제까지 터져나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참이거든요.

실명제는 역시 개혁중의 개혁인데 경제만의 개혁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적 혁명같이 느껴지고 폭탄같이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시중엔 돈줄이 꽉 막혀있었습니다.

오랜 불경기끝의 자금고갈이라 엎친데 덮친 꼴이랍니다.

은행의 문턱 높기는 여전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 또한 엄연했습니다.
5%의 수고비를 요구당하는 체험도 했습니다. 사정한파가 일과성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여럿이었습니다.

추석선물을 언제 어떻게 건네줄까 걱정하는 업자들의 안절부절은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장사 안될때 세금 꼬박 꼬박 내려면 짜증스러워 지는게 상정이지요.

그게 또 잔뜩 오르게 생겼으니 요즘 장사하는 사람들 앞이 캄캄하다는
겁니다. 일감없고 돈 떨어진데다 의욕마저 잃는다면 그것 큰일 아닙니까.

좀더 여유를 갖고 살수있도록 해주실수 없겠습니까.

무엇인가 불편해하고 어딘가 거북살스러워하는 사회분위기를 살펴주셔야
겠습니다.

김영삼대통령께서 정치는 9단이고 방향도 잘잡지만 실물경제엔 둔감하다는
소문도 좀 챙기셔야겠습니다.

경제자유화와 개혁은 반드시 경제발전을 추구한다는 S 헌팅턴교수의 글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우에 따라서 개혁지도자의 상당한
후퇴감수도 권유했습니다.

큰고기는 잡되 작은 고기는 놓아주는게 어떻겠습니까?
조금은 여유를 틔어주고 신바람을 낼수있게 분위기를 잡아주십시요.

우리가 언제 은행돈 쌓아 놓고 장사한 적이있습니까.

배짱 하나에 발로만 뛰던 예전보다는 실력도 꽤 갖췄거든요.

우리는 충분히 해낼수 있습니다. 조금만 틔어주십시요.

가슴뿌듯한 야망과 자존심을 가슴에다 품고 다시한번 냅다 뛰어보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