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을 예정이던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여야대립과 의사일정 절충실패로
국회가 공전하는 바람에 무산된 일은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파동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정치마저 실종돼버린 딱한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국회가 지난11일 오후 100일간의 정기회개막 방망이만 두들기고는
의사일정을 둘러싼 주말의 여.야협상이 결렬되자 청와대는 연설을 취소해
버렸다. 이런 사태는 일찍이 없던 일로서 과거 어느때보다 할일이 많은
올가을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어둡게 한다.

이듬해 예산안등을 심의하는 정기회벽두의 대통령 국정연설은 본인이 직접
출석해서 하든 혹은 대독하든 정부의 새해 국정운영방향과 주요정책내용을
국민앞에 밝히는 기회로 오래전부터 관례화돼온 행사이다. 민주국가에서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기구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연설은 곧
국민을 향한 것으로서 애시당초 여.야당의 정치흥정대상이 될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구태를 못벗는 한국정치의
후진성때문이다.

민자 민주 양당은 제각기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있다. 국정조사가
어쩌고 누구의 증언이 저쩌니 하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어느하나도 설득력이 희박하며 이번 일은 한마디로 두 정당 모두에 책임이
있다. 민자당은 집권여당으로서의 정치역량이 부족하고 민주당은 새로운
모습의 야당상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야정당과 정치인 국회의원은 지금 그들에게 쏠린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바로 정치개혁이고 최우선의
개혁대상은 정치인들이라고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 더이상 하늘아래
둘도없는 국회라는 자조의 소리가 자신들 입에서 나오는 일이 없도록
정신을 차려 진정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좀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