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된지 3년이 돼가고 있는 가운데 통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독일의 자이트(Zeit)지공동발행인인테오 좀머씨는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통일독일의 국민들은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 통일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의 글을 요약한다.
<편집자>

독일이 재통일된지 1천일 남짓 됐다. 통일은 예기치 않은 역사의
선물이었으며,유럽을 뒤흔들었던 격변의 결과였다. 독일인들은 당시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나 3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은 몹시
당황해하고 있다. 통일은 핑크빛 꿈이 아니었다.

독일은 세계의 한가운데서 좌우 양쪽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를 사회시장경제로 수정해야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낡은 공산주의적 계획경제를 시장원리에 적응시켜야
하는 무거운 짐을 이중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구동독을 서독의 생활과
생산성 번영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올 한햇동안 서독으로부터
동독으로 이전된 공공자금 규모는 1천8백억마르크(약2천8백7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도 12~15년간은 매년 1천5백억~1천8백억
마르크를 동독재건에 투자해야 할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통일비용이
이처럼 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돈문제뿐만이 아니다. 양국민들간의 융화가 어려워 사회적인 안정이
저해되고있다. 사실 반세기에 걸쳐 상호접촉을 거의 금지당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경험하지못했던 별거가족이 다시 가정을 함께 꾸려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겨운 일이다.

구동독인들은 아직도 서독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양국민들은 서로 다른세계에 살아 오면서 각기 다른 본능과 감각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구동독인들은 과거 제한된 만족을 누리면서 안정된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도전과 기회가 널린 세계이다. 그
이면에는 격동과 고통 그리고 눈물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벌써부터 독일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재할인율을
9차례나 인하한 프랑스은행이 독일연방은행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럽의
금리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프랑스경제의 기반으로 보건대 프랑화가 유럽통화제도의 기축통화로서
마르크화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일부 프랑스의
고위관리들이 이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이 경제대국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독일의 작년
국민총생산(GNP)은 2조7천억마르크(약4조3천억달러)에 달했다. 세계
제2위의 수출국가로서 일본을 저만큼 제쳐놓고 있으며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또 25%에 육박하는 높은 저축률을 갖고 있으며 매년
2천5백억마르크가 은행계좌에 입금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지출해야할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독일은 이미 하반신이 허약한 거구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이 과거 40년간 분단국가로서 각기 형성해 온 아이덴터티(국가적
자아)를 어떻게 하면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또 통일된 대독일이
세계무대에서 수행할 일은 무엇인가.

이것을 하루아침에 이루려고 해서는 안된다. 콜 총리는 최근 "3~5년이면
통일의 후유증이 어느정도 치유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지나친
낙관이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앞으로 만용을 삼가고 세금인상과 재정지출및 각종
사회복지비의 삭감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들도 앞으로
10~15년간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구동독인들은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하루빨리 적응함으로써 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양국민들간의 경제적 부의 격차가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다. 지금 양국민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경제적
수준의 격차임을 고려하면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세계속에서의 독일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과거보다는 그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일은 91년 걸프전 당시 전쟁수행비용으로 1백70억달러를 미국에
지원했으나 이같은 일은 이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5년동안
유럽공동체에 거액의 기금을 제공함으로써 유럽의 통합에 기여해 왔으나
이것 역시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평화유지에 참가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평화집행"작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리이다. 전 독일인의
4분의3이 독일이 자위를 목적으로 하는 비군사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상의 벽은 허물었지만 마음의 벽은 아직도 건재한 것이 현실이다.
독일인들이 이 벽을 허물고 진정한 대독일민족으로서 대내외의 위상을
새로이 하는데는 적어도 한 세대의 세월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