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예금증서(CD)등 비실명 금융상품에 돈을 예치한 거액 전부나 일
부 공직자들이 금융실명제 실시후 이름이 드러나기를 꺼려해 만기가 지
났는데도 돈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CD만도 최근 1천억~1천5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초 공직자들이 재산등록을 하면서 재산 내역서를 작성때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자금출처''를 댈
수 없는 재산을 숨기기 위해 무기명인 CD를 샀던 공직자가 적지 않은 것
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자금을 찾기 위한 방안 마
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 때문에 서울 명동과 강남 일대의 사채중개업
소에는 만기가 이미 돌아왔거나 임박한 CD를 실명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
로 15~30%가량 싼 값에 처분하겠다는 매물이 나돌고 있다.

일부 공직자들은 자금출처를 `조작''할 수 있을 만한 친지나 친구들에
게 부탁, 또다시 남의 이름으로 실명확인을 하고 재예치를 하거나 자금
을 인출하는 살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5대 시중은행의 경우 실명제실시 후 만기가 돌
아왔으나 만기원리금(액면금액)을 찾아가지 않은 CD는 4백억원에 이르며
은행권 전체로는 1천억~1천5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C은행 관계자는 "종전엔 만기가 돌아오면 대부분 고객이 즉시 재투자
를 하거나 현금으로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최근엔 1백억원에 이르는
CD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는 공직자들 가운데 CD를 갖고 있다고 밝힌 사람이 극소수
에 불과한 사실과 관련, "지난 5~7월 사이 공직자들의 대리인으로 추정
되는 사람들이 은행 창구에서 CD증서를 실물로 상당액수를 사갔는데 거
의 모두가 없다고 공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모 금융기관의 자금담당 간부는 "4억원어치의 CD를 3억8천만원에 사라
는 제의를 잘 아는 은행간부로부터 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모은행의 영업담당 차장은 "이달 초 한 재일교포가 CD 1백억원어치를
60억원에 사라는 제의를 모 정당의 한 의원측으로부터 받았는데 매입할
지를 상의해 사지 말도록 한 일이 있다"고 털어 놨다.

그러나 CD자금운용에 전통한 한 금융관계자는 "공직자건 정치인이건
CD를 선호했기 때문에 제2의 차명을 통해 재예치하거나 현금인출이 상당
수 이뤄진 상태"라면서 "현재 고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믿을만한 차명을
구하지 못한 일부 공직자들 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명제실시 후 지난 7일 현재까지 실명확인을 하고 CD를 현금으로 찾
아간 것은 모두 6천1백30억원이며 현재 발행잔액은 12조3천억원으로 매
달 평균 4조원 가량이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