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헤세의 방랑이란 소설의 첫시작은 독일 농가의 무겁고 음울한
풍경들과의 헤어짐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방랑하는 자를
정주하는자들보다 유목의 피를 지닌자로 규정하고 있다. 여행과 방랑은
이런점에서 다르다.

언젠가 우연히 겨울의 방랑을 실천하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모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각자의 자기성취 또는 자기 실현일뿐이다. 여행의
일정과 숙소만 동일할뿐 공동의 목적도 주제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였으며, 시기는 언제나 12월말에서 1월로 잡아 망년과 신년의 하례로
들떠있는 서울을 벗어나 나자신을 위한 시간들을 보내려는데 목적을 두었다.

91년에 만든 이 모임은 두번의 겨울탐색을 벌였는데 92년 영하 30도의
혹한지역인 백두산일대와 93년 우루무치 투르판 돈황을 잇는 천산산맥을
중심한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여행의 기간은 대략 15일전후 여행경비는
백만원이내를 원칙으로 정하였다.

회원이라고 굳이 부르는 멤버들은 오상길(화가) 홍승일(화가) 이희섭
(화가) 김찬동(화가) 도병훈(화가) 이준목(화가) 박찬(시인) 김용범(시인)
이창경(신구전문대) 정재영(외대) 채철주(사업) 민병화(외대) 홍성암
(소설가) 이사영(신구미디어 대표) 서상근(사업) 박정재(화가) 등인데 12명
을 전후하여 한팀을 구성하고 있다.

두번을 다 중국을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온 세계에 대한 지적
관심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이며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싹쓸이 관광객들이
한명도 없는 오지를 돌아다니며 스케치를 하거나 자료를 찾으면서 어김없이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이러한 방랑의 결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지닐뿐 공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정중 어느곳에 도착하던 그곳의 시장을 찾는다는
것과 서점과 미술관 박물관은 필수적으로 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한국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은 더욱 열심히 찾는다는 것을 무언의 합의로
실천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창 교하성에서는 고선지의 유적을, 흥교사에서
신라승 원측과 이범석 부대의 광복군 주둔지를, 백두산을 오르는 코스를
바꿔 명월진 노구툰으로 향하며 동북항일 연군의 전투지역을 찾아 우리와
어떤 역사적 인연의 땅들을 확인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물론 이런 것만은
아니다. 일반여행객들과는 달리 시장같은 곳을 헤매다 보면 통양구
이라든가, 순토종누렁이 보신탕등 생각할수 없었던 지역의 독특한 음식과
술을 만나게 된다. 그러할때 이를 너무나도 열심히 찾아 먹는다는 것도 이
모임의 가장 자랑할만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대체 손님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 돈황이나 우루무치 이 도백하의 호텔에서 극진한 VIP대접
을 받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은 기억이다. 이번 겨울은 모임의 의견이
네팔과 하바로프스크 카슈카르로 3분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곳도 평균
영하 30도는 되는 곳들이고 싹쓸이 관광객들이 없는 곳이라 다 마음에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