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실시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비롯 정부가 총 1조원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은행창
구에선 종전과 다름없이 담보를 요구하거나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
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아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22일 중소업계에 따르면 사채시장동결로 자금압박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발표만을 믿고 어음할인이나 운전자금대출을 위해 은행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은행에선 종전과 똑같은 대출조건을 제시하거나 대출을 미루는
사례가 많아 긴급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도장기계를 만드는 길탑상사의 신동휘사장은 실명제이후
몇차례 거래은행을 찾아 긴급운전자금이나 소기업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은행측은 재원이 없다며 난색을 표해 발걸음을 돌렸다.

신사장은 현재 은행할인한도 6억원을 모두 소진하고도 4억원의 어음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사채시장에서의 할인길이 막혀 은행에 할인한도
확대를 요청했으나 이 마저도 담보를 요구해 한도확대를 못받은 상태다.

강원도 춘천군에서 시멘트가공제품을 만드는 삼우콘크리트의 박재성사장도
거래은행에 긴급운전자금대출을 요청했으나 부동산담보등을 요구해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밝힌다.

경기도 부천소재 밸브업체인 일신자동밸브의 신재보사장은 어음할인을
못해 겪는 자금난을 덜기 위해 은행에 8천만원의 대출을 요청했으나 재원이
없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은행측은 더욱이 지금은
실명제여파로 업무가 폭주해 상담할 시간도 없으니 내달에나 얘기를 하자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기계업체인 (주)템포의 서경수사장은 어음할인한도를
신용으로 1억원만 늘려달라고 요구했다가 지점장이 자기전결로 할 수없는
사항이라며 거절해 추가할인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잇단 지원책발표에도 불구,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나 은행본점의 강력한 의지가 은행창구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데다 은행지점들은 우선 자체자금으로 대출을 집행해야돼 재원확보가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협중앙회의 최재웅이사는 "정부정책이 일선 은행창구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편의를 위해 위탁보증을 할 경우
은행업무가 늘어나고 신용대출도 나중에 부도가 나면 책임추궁을 당할까봐
기피하는등 은행이 업체지원업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진정으로 중소기업지원의지가 있다면 중소기업이 보유한
상업어음은 일정기간 담보없이 무조건 할인을 해줘야 하며 나중에 부도가
나면 담당자를 문책하지말고 전액 재정에서 보전해주는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더코산업의 김덕호사장은 "중소기업이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담보가
없기 때문인데 은행에서 담보를 계속 고집할 경우 각종지원책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업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한은은 지난 14일이후 1백37개업체에
1백1억원의 긴급운전자금을 이미 지원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