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에서 우리들은 만났다. 40여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같은
또래다 보니 자연히 쉽게 어울릴수 있었고 교육을 마치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아 뭔가 조금은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그게 어느새 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처음 7명으로 시작된 모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자칫 여성이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쉬운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사회학및 여성학 관련도서를
읽고 토론을 하였다. 한달에 한번씩 모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성숙해 갔고 또한 좁게 묶여있던 시야가
부엌만이 아닌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시야로 넓어져갔다.

이러한 성장과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신바람이 나서 열심이었고
똑똑해져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남편의 시선을 느낄때 더더욱
신바람이났다.

그런데 이렇게 신바람 나는 일도 고비는 있나 보다. 몇년이 지나면서
7명의 식구가 5명으로 줄었다. 지혜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아내
어머니 며느리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공부하는 대학원생등 5개의 명함을
지니고 동분서주하는 광숙씨가 대학원마치고 나오겠다며 쉬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주부이면서 사업을 하는 순옥,현모양처 정자,학구열 강한
인영,젊은나이에 홀로 되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직장생활하며 열심히 사는
난숙씨,한국여성의 전화 문화부장으로 일하는 필자등 5명이 모임의 멤버로
남아있다. 아마 내년쯤은 흩어졌던 멤버들이 다시 모일수 있는 기회가
올것같고 보강도 해야될것 같다.

이제 모임의 명칭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 모임 명칭은
"띠"이다. 같은 또래 집단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인간과 인간을 하나로
묶을수 있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함께 삶을 공유할수
있는,그래서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관계로 이끄는것이 이 "띠"모임의
역할인 것이다. 얼마전 민간단체와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남북통일을
향한 인간띠 잇기라는 운동이 있었다. 우리 띠모임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하는 운동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해 한해가 지나면 우리는 쌈짓돈을 털어 모은 회비에서 책한권씩을 사서
나누어 갖는다. 그외에도 다달이 과제에 의해서 사서 읽고 토론하는 책도
있다.

지금도 내 책장엔 그동안 우리가 보고 토론한 책,또 연말에 기념으로 사서
나누어 가진책들이 다른 책들과 가지런히 꽂혀있다. 박완서의 살아있는
날의 시작,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조혜정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