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의 접촉이 재개되고있다.

10일 모스크바서 개최된 양국 대외경제관계 차관급 회의는 그동안 급냉
했던 러시아-북한관계의 정상화에 합의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극비리에 진행된 이번회담의 의제는 러시아의 대북 투자재개,북한의 대러
채무,나진항의 개방과 국제중개항으로의 개발,상호 무역관 설치외에 정부간
협정문제까지 포괄하고있다.

정부간 협정문제에서는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체결하고 93
년도 무역협정도 조속히 체결하기로 했다고 기자와 접촉한 러시아측 관리가
확인했다.

한편 외무부의 한관리는 "북한의 김정우 대외경제부 부부장이 러시아에
들른김에 의제없이 파트너를 만난 것이어서 회담이 아닌 예방"이라고 주장
해 이회담을 둘러싸고 생길 수있 는 파장을 극소화하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보면 핵문제등을 둘러싼 러시아와 북한간의 냉랭한 외교적 마찰은
아직 해소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시기에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해빙의
조짐이 일고있어 관심을 끈다.

실제 양쪽은 각종협정체결 시한을 쌍방간 특별한 설명없이 오는 10월께로
설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관리는 북한핵과 관련한 옐친 대통령의 포고령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이번 협상에서 상당히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부 부부장은 김달현 부총리직속의 차관급 고위관리.
구소련의 붕괴로 러-북한관계가 소원해진 이후 러시아를 방문한 최고위급
인사로 관계정상화를 타진한 극비사절이었던 셈이다.

지난 5월말께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모스크바를 들른 적은
있으나 우즈베크 방문을 위한 경유일 뿐 아무런 공식일정이 없었다.

중요한 시기에 러-북한간 접촉이 재개됐다는 얘기다. 김정우 부부장은
미하일 프라드코프 러 대외경제부 차관을 만난외에도 러시아 기업인과
광범위하게 접촉했다.

지난 6일 방문이후 오는 14일까지 러시아에 머물면서 앞으로도 며칠동안
양국현안에 대해 조율을 계속할 전망이다.

러시아측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북한 나진항을 러시아 무역의 중요 전진
기지로 개발하는 계획 외에도 북한외채의 제3국 매각이 중요 이슈였다.
나진항 개발은 현재 러시아극동의 나홋카항이 극도의 적체를 빚어 러시아와
한국 일본간 무역이 심각한 애로를 겪고 있는데서 대안으로 검토되어 왔다.

나진항개발은 이번에 상호원칙적 합의를 했다. 나진항 개발에는 나홋카와
나진을 잇는 철도의 부설확충을 전제조건으로 러-북한이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대북채권을 제3국에 매각하자는 러시아측 제안(우리나라를 의미
한듯)은 북한에 의해 일단 거부됐다고 한 관리는 밝혔다. 북한은 대신 대러
외채를 상품 등 현물로 갚기로 하고 조만간 현물상환 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측은 러시아의 대북지원재개를 요청했다. 북한은 92년 공정 75%상태
에서 중단된 평양발전소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주로 장비)을 재개하고 건설
중인 제철소에 대한 원부자재의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제에
대해 러시아측 답변은 검토하겠다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은 러시아와 북한이 모두 절실히 상대를 필요로하는 자연스런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특히 최근들어 과거의 동맹국들과 빠른
속도로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지난 6월엔 쿠바와 차관재개협상을 가졌고
이어 베트남과도 고위급 회담을 잇달아 가졌다. 러 행정부 내에 사실상
2인자인 소스코베트 제1부총리는 최근 서방과의 느린 관계확대에 연이어
실망감을 표명하고 있다.

북한측의 필요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양측의 교역은 올들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중이다. 러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중 교역은 3억2천만달러. 러시아측이 2억7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북한은 5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같은 교역량은
지난해 동기대비 20%나 크게 증가한 것이다.

러시아 대외경제부의 한관리는 북한과 러시아의 교역이 지난해만해도 일부
(약20%선)정부간 교역이었으나 올들어서는 전액 민간교역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특히 모스크바와 평양에 무역관을 민간베이스로 개설키로 한 것도
이같은 추세를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 무역관 설립에는
러시아측에서 이미 25개의 무역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
졌다.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외채협상이 곧 개시될 것이라는 점이 이번 러-북한간
긴급회동과 결코 무관치만은 않다는 지적을 해둘 수 있겠다.

<모스크바=정규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