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미쓰 그사람 일부러 막부를 골탕먹이려고 그런 불상사를 저지른게
틀림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의 목을 자르기까지
할게 뭐겠소" "맞아요. 서양사람을 죽임으로써 존황 양이의 기세를 더욱
돋울 뿐 아니라, 막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그렇게 한게
뻔해요"
중신들이 모여앉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와키사카와 이다구라는
히사미쓰를 비난하는 투의 말을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그말에 대해서
미수노도 맞장구를 쳤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바로 그런 격이죠. 서양사람을
죽이면 일이 어떻게 된다는 걸 히사미쓰 그사람이 알 턱이 있겠소.
하룻강아지의 만용이 막부를 곤경에 물아넣었지 뭐요"
히사미쓰를 하룻강아지에 비유하는 말투가 듣기에 곤혹스러워서
쇼군보좌인 요시노부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하룻강아지라니, 좀 심하지 않소. 서양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을 때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을게 아니오. 그냥 길가에 서서 얌전히 구경하는
사람을 죽였을 리는 없지 않으냐 말이요"
그말에 정치총재인 마쓰다이라가 가세했다.

"말에서 내리라고 했는데,안 내렸을 뿐 아니라,오히려 말을 몰고 가교
앞으로 뛰어들었다지 뭐요. 그렇게 보고가 들어 왔어요" "그렇다면 응당
죽여야지요. 행렬 앞을 가로질러도 죽이는데, 더구나 말을 타고 가교
앞으로 뛰어들었다면 서양인이라고 해서 가만히 둘 수가 없지요. 그런
건방진 놈을 가만히 두다니 말이 돼요?"
두 사람은 히사미쓰 덕분에 벼슬자리에 오른 터이라, 자연히 그를 두둔
하는 입장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와키사카가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이번 사건이 정당한 일이라면 그럼 영국측의 항의를 묵살해야
된다는 건가요? 묵살해서 일이 끝날 것 같애요?" "충분히 할말이 있다
그거요" "할말이 있다면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인 히사미쓰가 직접 나서서
해야지, 일은 히사미쓰가 저질렀는데, 막부가 그 사후처리를 떠맡다니,
앞뒤가 안 맞아요. 우리가 무슨 히사미쓰의 뒤치닥꺼리를 하는 사람들
인가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오가사하라나가미치(소립원장행)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나가서는 안됩니다. 이번 사건은 비록 사쓰마의
히사미쓰가 일으켰지만, 엄연히 일본과 영국과의 문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