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그 말뚝에 묶였던 남정네는 풀려났다.

그리고 이틀 뒤,사이고는 새벽 산책길에 그 말뚝이 뽑혀 없어진 것을
알았다.

"흠-그러면 그렇지. 제깐놈이 내말을 안 듣고 배겨" 사이고는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가라는 사이고가 돌아가고난 뒤 당장 부하 관원에게 명하여 다쓰고
마을의 말뚝에 묶여있는 자를 풀어주도록 조치를 했다. 그러나 말뚝 제거
문제에 대해서는 망설이다가 이튿날에야 사이고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의
말뚝만 뽑아 없애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후일이 꺼림칙해서 그의
요구를 묵살해 버릴 수가 없었는데,그렇다고 섬의 모든 말뚝을 전부 제거해
버린다는 것도 본역소의 책임자로서 위신에 관한 문제여서 그렇게 그의
비위를 살짝 맞추어주는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던 것이다.

마을에서 별을 보는 말뚝이 사라지자,부락 사람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고,그것이 사이고의 항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자,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뚱뚱하고 장대한데다가 소눈깔만한 두
눈이 유난히 부리부리해서 겁나는 인상이었고,더구나 시마나가시가 되어온
국사범이어서 두럽기만 했는데,그런 사람이 섬사람들의 편을 들어서 그
무섭고도 치욕적인 말뚝을 없애주다니,참으로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뒤로 마을사람들은 사이고를 마치 자기네의 구세주처럼 대하게 되었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사이고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고,집에서 무슨 잔치라도
있으면 으레 그를 초대했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곧잘 반찬거리나 무슨
색다른 음식을 만들면 자취를 하는 사이고에게 갖다주었고,남정네들 역시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 그중 크고 값진 놈으로 선물을 하곤 했다.

하루는 류사민이 사이고를 방문했다.

"사이고 선생님,한가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는데,들어주시겠습니까?"
다쓰고 마을의 촌주이며 토호인 류사운의 동생이어서 류사민은 꽤나
콧대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이제 사이고에게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을 쓰는 것이었다.

"무슨 부탁인데요?어서 말씀해 보세요" "다름이 아니라,저.우리집 애와
형님집 애를 좀 맡아서 가르쳐 주실수 없는가 해서요" "아,그래요?좋아요.
나도 심심한 판인데 잘됐네요"
사이고는 선뜻 응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