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그렇구나"
세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번주인 나리아키가 자기에게 왜 육혈포를 선물로 주었는지,대뜸 그 뜻을
알겠다는 것이었다. 육혈포란 무엇인가. 사람을 쏘아죽이는 무기가
아닌가. 십여발의 탄환까지 상자 속에 넣어 놓았으니,분명히 누군가를
쏘라는 의미가 아니가.

그렇다면 누구를 쏘라는 것일까. 나리아키 다이묘가 지금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음."
세키는 손에 든 육혈포를 다시 한번 눈여겨 살펴보며 회심의 미소와 함께
어금니를 지그시 문다. 그리고 속으로, "명령을 아주 그럴듯하게
내리시는군" 하고 중얼거린다.

자기가 거사에 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해를 넘겼으니
금년에는. 하고 물었을 때,다이묘는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 육혈포가 담긴 나무상자를 가지고 와서
선물이라면서 주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거사를 결행하라는 명령를 말 대신
육혈포로써 간접적으로 표현을 한게 아니고 무엇인가. 차마 자기의
부하에게 이이나오스케를 해치우라는 말을 꺼내기가 거북해서 그랬을게
틀림없다. 그리고 실제로 암살에 이 육혈포도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술도 굳이 다이묘 자신이 먼저 따라주었고,처음에도
건배,마지막에도 건배를 했는데,그게 다 의미가 있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몸소 현관까지 따라나와서 배웅을 해주며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
눈길은 무언의 당부였던 것이다.

"세키,잘 가게나" 하고 약간 목이 잠긴 듯한 그런 정감어린 목소리를 한
마지막 말은 영원한 작별의 인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다이묘 도노,알았나이다. 다이묘 도노의 뜻을 받들어 이
세키데쓰노스케 신명을 바쳐서 기어이 이이나오스케를 해치우고야
말겠소이다"
주기가 있는 세키는 벅차오르는 흥분을 감당할 길이 없는 듯 육혈포와
탄환을 도로 종이에 싸서 상자안에 넣고는 두 손을 탁자 위에 덥석 짚으며
혼자서 소리를 내어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 육혈포가 마치 무슨 다이묘의
분신이라도 되는 듯 그 앞에 머리를 숙인다. 맹세를 하는 셈이다.

그러고나서 그는 뚜껑을 두 손으로 정중히 닫고,빨간 끈으로 상자를 도로
십자형으로 잘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