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Wine)의 기원에 관해서 페르시아에 다음과 같은 신화가 있다.

포도를 대단히 즐기던 왕이 있었는데 1년내내 먹기 위해서 항아리에
포도를 넣어두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항아리 안을 들여다 보니 포도에서
즙이 나와있고 그 즙은 거의 단맛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왕은 이것이
틀림없이 포도가 유해 물질로 변한 결과일것이라고 판단,그 항아리에다
"독"이라고 쓴 딱지를 붙여 두었다.

우연히 궁녀중의 하나가 이 독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 궁녀는 심한 두통을
앓고 있던 터인지라 독이나 먹고 죽어버릴 비장한 각오로 그 독을 마셨다.
이것을 마시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고 얼마후 깨어나 보니 자기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두통도 없어지고 기분도 상쾌해졌음을 느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서 그 독항아리를 다 비워 버렸다.

이 비밀은 오래가지 못해 그녀는 자기의 죄상을 자백하게 되는데
그후부터는 왕을 비롯 궁중의 고관들이 즐겨 이 음료를 마셨다.

이 신화를 위시해서 구약성서에도 와인에 관해서는 많은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구라파 문화와 와인은 떼어 놓을 수없는 관계에있다. 독일과
프랑스,프랑스와 이탈리아,그리고 구라파의 모든 나라들 사이에는 자기네의
와인이 세계최고의 와인이라고 서로 자랑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자존심을
걸고 자기네 것이 최고라고 믿고있다.

기후가 포도재배에 적당하지 못한 나라는 기후를 원망하면서도 포도를
재배해 보려고 무척 애를쓰는 모양이다.

수년전에 영국이 이에 성공하여 1백만병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영국의 일유지들이 대서특필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그 당시
우리는 6천만병을 생산 하였다).

70년대초부터 특히 구라파에서 근무하던 우리 공관장들은 하나같이 한국이
와인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특히 이탈리아대사로 있던 문덕주씨는
동양맥주가 와인 제조를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한국은 주류문화에 있어서
세계열강에 낄수 없다고까지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고상선배인
박두병전회장에게까지 진언을 하였다.

사실 외국 주재 대사들이 국경일잔치가 있을때마다 "너희 나라에는 와인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입장이 대단히 난처해져서 청주를 내놓곤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기초조사를 해본 결과 한국도 좋은 와인을 생산할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당시 서독에서 포도의 재배부터 시작해서
와인의 양조현장기술과 대학에서 와인의 기초이론연구도 끝마친 이순주씨를
초빙,와인 양조를 전담케 하였다.

나도 대부분 동행하였지만 이군은 포도 재배의 적지(강우량이 적고
그러면서 따뜻한곳 왜관이남으로 될수있으면 동해안쪽)를 1년넘게
답사했다. 과실재배에는 농지를 이용할수 없다는 것이 그때의 규정이어서
우리는 청하천에 제방을 구축함으로써 생긴 하상 10만여평을 제1농장으로
조성하였다(제2농장 밀양 하천부지 3만평,제3농장 청하 근교야산 5만평등).

농장조성에 있어 우리는 완전 기계화를 시도하였고 관개수 장치등을
자동화하여 될수있는한 사람손이 안들게 설계했으며 종묘도 한국 기후에
결딜수 있는 외국산을 과감히 도입하였다.

72년 농장조성이 끝난후 76년산 포도로 와인을 양조해서 76년 순수 한국산
포도주를 산출하고 77년에 시판하기 시작했다(포도는 식재한후 3년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이 와인의 이름 붙이기에 우리는 많은 고충을 겪었다. 그 이유는 그때
규정이 음식료품에는 외국 이름은 일절 붙이지못한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말의 현대어 고어등을 백방으로 뒤져서 최종적으로
"마주앙"과 "안드류"중 하나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참고로 "마주앙"은
"마주앉아서"의 옛말이고 "안드류"는 "두루 두루 앉아서"의 옛말이다.

그런데 "안드류"는 서양말에 "좋지 않은 와인"이란 뜻이
담겨있다는(Undrew)"마주앙"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78년 우리 마주앙을 격찬해 준 워싱턴 포스트의 모이니한 기자가 우리
"마주앙"을 한자로 "마주왕"으로 "술을 다듬는 왕"이라고 기재하였지만
실은 "마주앙"은 순수한 우리말로 마주않아서 한 잔 한다는 뜻이다.
"마주앙"하면 프랑스어 같은데 무슨 뜻이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많다.

와인공장 준공식은 천주교식의 의전으로 치렀다. 그 의전은 경건하고
신선미가 있는 의식이었으며 와인공장답게 구라파문화양식이어서 좋았다.
우리가 천주교양식의 준공식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때까지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던 미사주를 전량 국산 마주앙으로 대체할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주교의 제주선택은 대단히 까다로워서 그 나라에서 난
포도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와인 양조에 들어가서는 안되게 되어있고
제주의 맛도 고급이라야만 한다. 우리가 예부터 순곡주가 아니면 제주로
올릴수 없었던것과 서로 통하는 사고방식이다.

천주교 미사주로 그 품질과 양조기술을 인정받은 마주앙은 85년에 포도주
제조부문에서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가이젠하임대학 주최의
연구발표회에서 서독을 제외한 여타국이 생산한 포도주가운데 5개 우수
포도주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이제 국제적인 와인으로 격상되었다.

와인불모지에서 국제적인 와인을 창조해낸 데는 누구보다도 이순주씨의
공이 대단히 컸다. 이제 그도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었다. 그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