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재산공개파문이 한창 일던 지난달초 어느날. 과천
정부제2청사 2동앞 주차장에 늘상 보였던 애물단지 차 한대가 사라졌다.

81년형 "마크 파이브". 이 고물차가 갑자기 없어진 일은 2동에 근무하는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 장.차관 재산파문만큼이나 다소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차는 중형차가 즐비한 2동주차장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많은 공무원들로부터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기 때문이다.

소유주는 보사부 공보실에 근무하는 이승민사무관(30). 애물단지를
폐차시킨 이유에 대해 "고장이 하도 잦아서"라고 밝혔지만 젊은
공무원으로서 고위공직자 재산파문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좌절과 분노등의
감정이 계기였다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신세대공무원. 그는 자신을 이렇게 평한다. 평범한
공직샐러리맨이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선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있다.
윗사람에게 복종적이거나 "YES맨"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등 문제점도 있지만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알게됐을때 분노감마저
생기더군요"
이사무관은 이로인해 공직사회전체가 흔들리고 공무원사회가 부정부패의
온상인 것처럼 비춰지는데 대해 서글픈 감정이 앞섰다고 털어놓는다.

전남 목포에서 배와 버스를 갈아타고 4시간 가량 더 들어가야하는 땅끝
해남에서 지난64년 농사꾼 집안의 2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공부(목포고)를 잘했으나 전기대학입시에서 낙방하자 4년간 학비면제와
기숙사를 제공한 한양대 행정학과에 84년 입학했다.

운동권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가정형편을 고려,고시의 길을 택했다.
시험을 준비한지 1년반만인 86년 행정고시 전체수석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대학3학년 22세의 나이였다.

그는 속칭 끗발있는 부처를 다 마다한채 보사부를 지원했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가 너무 커 사회의 형평성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보사부 지역의료과에 배치되면서 착수했던 첫 과제는 위급한 환자를
구조하는 응급의료체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1년동안 내로라하는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고생한 결과로 그가마련한 안은 쉽게 장관으로부터
결재를 받았다. 그 순간 형용할수없는 큰 보람을 느꼈다고 그는 술회한다.
지난 90년의 일이다.

그러나 일에서 얻는 보람에 비해 경제적으로 겪는 고통은 적지않았다.
지난86년에 결혼,현재 5살난 아들과 2살짜리 딸등 4인 가족을
꾸려나가야하는 가장이다.

한달 받는 봉급은 80만원선. 지난해 4인가족 월 평균소득이
1백32만원(통계청조사)이었음을 감안할때 턱없이 적은 셈이다.

궁리끝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방위근무를 마치고 보사부
공보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퇴근후 1주일에 4~5시간씩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고시생들을 상대로 사회학을 강의하고있다.

수입은 한달 평균 50만원으로 가정생활에 큰 보탬이 되는 셈이다. 경기도
포일리에서 2천만원짜리 전세를 살고있는 그는 "생활고는 어느정도
해결됐지만 내집마련의 꿈은 오래전에 포기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요즘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있다. 한달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때의
충격과 고뇌는 말끔히 잊었다. 문민정부가 추진하는 "깨끗한 정부의
구현"은 젊은 공무원들에게 일할 의욕을 불러 일으켜주는 동시에
공무원조직에도 융통성있는 변화를 가져올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신정부의 개혁의지를 지지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습니다"그의 말속에서
새로운 공무원상의 정립,나아가 국민이 진실로 정부를 신뢰할수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것으로 기대된다.

<이성구기자>